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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정벌에 대한 한일간의 시각

저작시기 2008.10 |등록일 2010.01.08 한글파일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일본이 독도를 자기땅이라 우기면 우리도 대마도를 우리땅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조선시대 공도 정책으로 대마도에 조선인이 살지않아 왜구의 소굴이었던 대마도 세차례의 정벌을 감행했던 대마도에 대한 글이다. 목차와 본문 소개를 본다면 간략한 내용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목차

Ⅰ.머리말

Ⅱ.대마도 정벌에 대한 한일간의 시각
1.세 차례의 대마도 정벌
2.조선 우위의 한일관계로 가는 전기

Ⅲ.조선과 일본에 양속한 대마도
1.대마도를 왜인 통제의 창구로 이용하다.
2.조선으로부터 관직을 받은 왜인들
3.대마도는 우리땅

Ⅳ.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머리말
대마도는 한반도와 일본 본토의 중간에 위치한 섬으로 거리상 일본보다 한국 쪽에 훨씬 가까이 있으며 거제도의 1.8배 정도 되는 아주 작은 섬이며 섬의 95% 이상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산지로 섬이라기보다는 바다에 떠있는 산이라고 표현할 정도이다. 활주로를 만들 만한 평지가 없어 산을 깎아 비행장을 만들었으며 남북으로 나뉜 두 개의 섬을 통과하는 터널 수만도 100개가 넘는다. 여몽 연합군의 일본 정벌과 일본 내부 사정으로 고려와의 진봉관계(進奉關係)가 단절되자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마인은 왜구로 변모되어 갔다. 대마도는 정벌 이전부터 이키·마츠우라 지방과 함께 왜구의 소굴로 인구가 적고 토지가 척박하여 자체적으로 자급자족을 할 수 없었고, 일본의 내전으로 인해 몰락한 무사 층이 이곳으로 피신하여 약탈을 하며 그들의 삶을 유지 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한국 또는 명나라 연안에 침구하여 약탈을 자행하였고 고려나 중국 정부는 골치를 알았다. 이러한 왜구를 근절하기 위하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3차례에 걸쳐 정벌을 거행하기도 하였다.

Ⅱ.대마도 정벌에 대한 한일간의 시각
1.세 차례의 대마도 정벌
우리 민족은 항상 일본에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한 나라로 인식하지만, 유달리 외침을 하지 않았던 우리역사 가운데 공격전이 있었으니 바로 대마도 정벌 이었다. 세 차례 거행된 정벌 중 첫 번째는 1389년(창왕1) 2월로 박위에 의해서다. 전함 1백 척을 이끌고 대마도를 정벌하여 3백 척을 소각하는 등 전공을 올렸다. 두 번째 정벌은 조선초기인 1396년(태조 5)에 이루어졌다. 1396년 12월 3일의 정벌은 잠잠했던 왜구가 극성하자 응징책의 일환으로 계획된 것이었다. 당시 우정승이던 김사형 등은 5도의 병선을 모아 이키도(壹岐島)와 대마도(對馬島)를 정벌하였던 것이다. 대마도 정벌 중 가장 규모가 크고 효과가 있었던 것은 1419년(세종 원년) 세 번째의 정벌이었다. 우리 측에서는 기해년(己亥年)에 있었던 사건으로서 ‘기해동정(己亥東征)’이라 하고 일본 측에서는 일본 연호를 본 따 ‘오에이의 외구라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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