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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에 관한 고찰

저작시기 2010.01 |등록일 2010.01.05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송나라에 관한 고찰

목차

●송나라
●역사
●송나라의 관제
●사회
●경제
●문화
●고려와 송나라

본문내용

●문화
송나라의 문화는 흔히 서양의 르네상스 문화와 비교되기도 하는데, 복고적(復古的)인 성격이 송대문화의 한 특징을 이루는 까닭이다. 예를 들어 문학, 특히 산문(散文)에 있어서 송나라는 하나의 뚜렷한 시대적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당나라 말기부터 한나라의 고문(古文)으로 돌아가자는 이른바 고문부흥운동이 고개를 들었으나 그 세력은 아직 미미하였다.
그러나 북송 중기부터 구양 수(歐陽修) 등이 고문부흥운동을 다시 제창하면서 이 운동은 사대부들의 동조를 얻게 되고 마침내 문단의 큰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다. 또한 송나라의 유학(儒學)은 주자학(朱子學)으로 대표되는데, 이것 역시 하나의 사상부흥운동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때까지의 유학은 훈고학(訓詁學)이 주류를 이루어 경전(經典)의 자구(字句) 해석에만 천착하는 학문이었다. 그로 말미암아 유교는 정작 민중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오히려 불교보다 열세에 놓인 느낌마저 있었다. 그와 같이 민중과 유리되었던 유교가 송대에 이르러서는 불교의 자극을 받고 고대의 원시유교(原始儒敎)로 되돌아가 성현(聖賢)의 정신을 올바로 파악하려는 새로운 기운이 싹텄다. 그리고 이것이 곧, 주자학으로 열매를 맺게 되었다.
복고풍조는 각 분야에서 다양하게 개화되었으며 취미분야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가령, 당나라 이전의 중세기에는 정원을 꾸밀 때에도 정원석(庭園石)에 채색을 하는 등 인공미(人工美)를 극도로 살린 화려한 조경(造景)이 환영을 받았으나, 송나라 때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원시적인 자연경관을 살린 정원을 매력있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와 같은 풍조와 아울러 사대부의 생활 주변에도 고품(古品)을 아끼고 사랑하는 복고취미가 크게 유행하였다. 고동기(古銅器) 같은 것이 발굴되면 사대부들은 그것을 서재에 장식하고 감상하는 것을 하나의 취미로 삼았다. 송나라 때 편찬된 《고고도(考古圖)》 《박고도(博古圖)》 등은 모두 고동기 발굴품을 수록한 책들로서, 학문적으로 귀중한 자료가 되는 것은 물론이지만, 당초의 편찬 동기는 취미생활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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