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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놀이에 관한 고찰

저작시기 2010.01 |등록일 2010.01.05 한글파일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풍물놀이에 관한 고찰

목차

●풍물놀이
●풍물놀이 역사
●명칭
●풍물놀이 구성
●편성 및 형태
●장단
●지방별 풍물놀이

본문내용

●풍물놀이 역사
농악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문헌이 없어서 상고할 길이 없다. 그러나 한민족이 한반도에 정착하여 농경생활을 시작한 그 때부터 있었으리라 추측된다. 즉, 삼국시대에는 5월의 파종 후와 10월의 농공필(農功畢) 후에 하늘에 제사하는 제천의식(祭天儀式)이 있었다. 이때 온 마을의 남녀노소가 한데 모여 며칠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래하고 춤추고 술을 마시며 즐겼다 하니, 틀림없이 이때 벌써 농악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또 고려가요 《동동(動動)》의 후렴에 나오는 “아으동동다리”라는 가사에서의 ‘동동’은 농악에서 쓰이는 북소리의 의성(擬聲)인 ‘둥둥’에서 온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이제현(李齊賢)의 《해시(解詩)》에 전하는 《사리화(沙里花)》 같은 농부가와, 고려 제25대 충렬왕이 일반 농악에 관심이 커서 장려한 일이 있었다는 기록들도 보인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세종 ·세조 등은 농악과 농가에 대한 관심이 커서 선농가자(善農歌者)를 불러 연주하게 한 일이 있다. 또 농가구(農歌嫗)를 도왔으며, 가기(歌妓)로 하여금 농가를 장려하게 하였다. 고종은 대단한 농악 애호가로서 경복궁 수축공사 때에는 밤마다 농악대회 같은 모임을 개최하여, 부역인들의 위안을 겸하는 등 농악육성에 힘썼다.
풍물놀이 혹은 풍물굿의 유래를 말하는 데 농사 안택 축원설, 군악설, 불교 관계설 등 세 가지 학설이 있다. 현존하는 풍물놀이의 당굿, 샘굿, 집돌이로서의 지신밟기 등이 신을 즐겁게 해주는 오신(娛神)과 잡귀를 쫓아내는 축귀(逐鬼) 등을 포함하여 나타나고 있고, 진(陣)풀이와 군기인 영기(令旗), 군인이 쓰는 모자인 군립(戰笠)과 같은 것들이 군악(軍樂)의 요소로 보인다. 그리고 사물이나 고깔, 삼색띠나 무동들의 나비춤 같은 것들이 불교적 요소로 인정되기 때문에 그런 학설들이 나왔을 것이다

참고 자료

위키백과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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