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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고찰

저작시기 2010.01 |등록일 2010.01.02 한글파일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영화에 대한 고찰

목차

●영화
●영화의 역사
●한국영화의 역사
●산업으로서의 영화
●예술로서의 영화
●한국의 현대영화
●영화의 사회성

본문내용

●영화의 역사
1. 발명
물체의 움직임을 포착하여 재현코자 하는 인간의 꿈은 태곳적부터 있어 왔다. 지금부터 2∼3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에스파냐 알타미라의 라스코 동굴에는 다리가 8개인 황소의 벽화가 있는데, 이는 바로 인류의 그와 같은 꿈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1초에 24개의 정지된 화상(畵像:frame)을 연속적으로 돌려 인간의 잔상(殘像) 현상을 이용하여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영화가 발명되기까지는 기원 2세기부터 시작하여 무척 오랜 시간이 흘러야만 되었다.
구체적으로는 완구식(玩具式) 움직임을 보여주는 장치인 타우마트로프(thaumatrope)나 페나키스트로스코프(phenakistroskope), 그리고 주트로프(zootrope) 등 19세기에 들어와 움직이는 그림을 보여주는 기계가 나타났지만 영화의 발명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것은 사진술(寫眞術)의 발명이었다.
1823년 프랑스의 N.니에프스와 다게르 등에 의해 사진술이 발명되었고, 1878년 미국인 E.마이브리지가 24장의 달리는 말[馬]의 모습을 촬영한 데 이어, 프랑스인 J.E.마레이가 사진총(寫眞銃)을 고안해냈으며, G.이스트먼이 셀룰로이드에 의한 ‘롤 필름(roll film)’을 제조한 데 힘입어 에디슨이 혼자서 움직임을 볼 수 있는 키네토스코프를 1889년에 발명하였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완구식 원리와 사진술과 필름 및 위에 든 그 동안의 몇 가지 실험 등을 이용하여 프랑스의 L.뤼미에르 형제가 시네마토그라프라는 촬영기와 영사기를 발명하여, 95년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는 영화를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에디슨은 이보다 1년 늦게 여럿이 볼 수 있는 비타스코프를 발명했고, 이어 독일의 E.스클라다노브스키와 영국의 R.W.폴은 각각 독자적으로 비오스코프를 발명하였다. 이렇듯 영화는 19세기가 거의 끝날 무렵 비슷한 시기에 여러 나라에서 과학문명의 발달이 가져다준 필연적인 산물이었다.



●영화의 사회성
영화는 사회에 대해 그 어느 예술 매체보다도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영화가 시각적이면서 청각적인 매체일 뿐 아니라 한 장소에서 많은 사람을 집단적으로 감동시킬 수 있는 막강한 전달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통치자들이 영화를 그들의 이념이나 당(黨)의 선전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레닌은 일찍이 “모든 예술 중에서 영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면서 러시아 혁명 직후 영화사업을 즉각 국유화함으로써 영화를 통한 사회주의 혁명의 수행을 강요하였다. 히틀러나 B.무솔리니도 영화를 나치즘과 파시즘을 위한 한낱 선전도구로 전락시켰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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