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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기하학자][피타고라스][아르키메데스][기하학][비유클리드]그리스의 기하학자 피타고라스와 아르키메데스, 기하학의 발전, 비유클리드 기하학, 18세기에 와서야 풀린 3대 작도 불능 문제, 현대의 기하학

저작시기 2009.04 |등록일 2009.04.08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8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그리스의 기하학자 피타고라스와 아르키메데스, 기하학의 발전, 비유클리드 기하학, 18세기에 와서야 풀린 3대 작도 불능 문제, 현대의 기하학 심층 분석

목차

Ⅰ. 그리스의 기하학자 피타고라스와 아르키메데스
1. 피타고라스
2. 아르키메데스

Ⅱ. 기하학의 발전

Ⅲ. 비유클리드 기하학

Ⅳ. 18세기에 와서야 풀린 3대 작도 불능 문제

Ⅴ. 현대의 기하학

참고문헌

본문내용

1. 피타고라스

피타고라스는 B.C. 569년경 사모스 섬에서 출생했다. 그는 젊었을 때 이집트, 바빌로니아 등 당시의 선진국에서 수학을 공부한 후 고향에 돌아와 학교를 세웠다. 그 학교에는 귀족의 자제가 많았는데, 그들은 별 모양의 오각형 휘장을 달고 다녔기 때문에 누구나 그들이 `피타고라스 학교`의 학생인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학교의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운 것이나 연구한 것은 일체 밖에다 발설할 수 없도록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으며 여기서 발견한 것은 모두 피타고라스의 이름으로 발표해야 했다. 그들은 결속을 다지기 위하여 여러 가지 규율 아래 절제된 생활을 하였는데 그 규율 중에는 콩을 먹지 말라는 것도 있었다. 이는 그들이 숫자를 표시할 때 모양으로 나타냈다.
피타고라스 학교 학생들은 졸업한 후에도 학교의 휘장을 달고 다닐 만큼 결속력이 강했으며 이러한 성격 때문에 마침내는 하나의 비밀 결사 단체가 되었다. 세력이 커진 이들은 결국 정치에도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데, 귀족의 자제가 대다수였으므로 나라의 정치가 점점 귀족 중심이 되어 갔다. 그들의 세력이 너무 커지자 반대파들은 위협을 느껴 피타고라스를 붙잡아 살해하고 만다. 그러나 그의 가르침은 제자들에 의해 이어져 그후 수백 년간이나 피타고라스학파로 남아 활동하였다.

2. 아르키메데스

아르키메데스(Archimedes:B.C 287212)는 시라쿠사 사람으로, 젊은 시절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대학에서 공부하였는데 그는 이 대학에서 배운 수학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 손꼽힌다. 시라쿠사로 돌아온 아르키메데스는 당시의 헤론 왕 밑에서 여러 가지 연구에 힘썼다. 다행히 헤론 왕은 아르키메데스를 아끼며 극진히 대접하고 그의 연구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주었다고 한다.
그는 수학, 물리학, 기계학, 수력학 등 여러 분야에 관심을 둔 천재적인 과학자이자 수학자로 그의 이러한 면은 실생활에서도 잘 나타났다. 어느 날 목욕을 하던 아르키메데스가 부력의 원리를 발견하고는 기쁜 나머지 벌거벗은 채로 거리로 뛰쳐나간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또한 실생활에 흔히 쓰이는 지렛대의 원리를 알고, 이를 이용하였으며 전쟁 무기 제작

참고 자료

○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유클리드의 창 : 기하학 이야기, 까치, 2002
○ 이종우, 기하학의 역사적 배경과 발달, 경문사, 2002
○ 유클리드, 기하학 원론(평면기하), 교우사, 1998
○ 최창우, van Hiele 모델에 의한 기하학적 사고력 개발에 관한 연구, 초등수학교육1(1), 한국수학교육학회, 1997
○ M.J.Greenberg, Euclid기하학과 비Euclid 기하학, 경문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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