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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이데올로기로서의 유가(儒家)의 사상(思想)을 통해 본 고대 중국 - 전한(前漢) 시기 유가사상의 확립을 중심으로

저작시기 2008.06 |등록일 2009.04.05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0페이지 | 가격 2,600원

소개글

논문과 비슷한 형식으로 쓴 리포트입니다.

분량은 표지를 포함해 10장입니다.

머리말-맺음말 부분은 주관이 들어가게끔, 짜깁기 느낌이 전혀 없구요.

본문은 참고문헌이 꽤 많은 만큼 참고문헌이 많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참고문헌이 다 논문, 전문서적인만큼 글의 수준은 높습니다.

목차

머리말

1. 춘추전국시기 유가사상의 전개와 기본성격
- 공자의 유가사상의 현세 중심적 성격과 공자에 대한 권위 부여
2. 전한시기 국가 통치 이념으로서의 유가 정립
- 한 초, 황로사상의 우세와 한무제의 유가 확립
- 한무제 당시 유가 채택의 이유
- 동중서의 사상과 그에 대한 평가
3. 유가 정립과 관련한 유학자들의 입장

맺음말

본문내용

당시 儒(유)가 국가로부터 고립된 채 예(禮), 악(樂), 덕(德), 인(仁), 의(義) 등에 집중한 것은 당시 사회인 춘추전국시대가 유가들의 눈에 덕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유가들은 정치에 참여했을 것이다. ‘유가식 천국’이란 이상(理想)이며, 그들은 실제로는 현실에 타협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 “공자 자신은 비록 적절한 환경에서 복무하고 싶다는 욕망을 표출하긴 하지만, 오직 관직을 거절하거나 사임할 뿐이라고 기술된다.” 공자가 욕망을 표출하고도 관직을 거절하고 사임했던 것은 당시 공자의 기준에 적합한, 즉, 덕(德)과 도(道), 인(仁)을 행하는 국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공자는 “관직을 보유할 수 있었던 제자들은 仁(인)하지 않았다고, 나쁜 국가에서의 복무를 거절하고 떠나야 한다고, 관직을 버리는 것이 최고의 덕이라고, 道(도)가 없는 상태에서 관직 보유는 부끄럽다고, 관직 임명은 사람을 망칠 것이라고, 小人(소인)과 함께 정부에서 일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러한 것들은 그런 국가 복무의 거부를 구성하지는 않지만, 군주에 대한 헌신을 조건적으로 만든다. 유가 학자는 유학의 총체적 수용을 요구하거나 아니면 복무로부터 물러났는데, 이 도는 전국 정책의 주요한 제도들의 거부를 수반했다. 유가는 독특한 원리들과 실천들에 기반한 상상의 대항국가를 발전시켰고, 그들이 관직임명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서 이 대안모델을 군주가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다.
『논어(論語)』에서의 공자의 이러한 주장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맹자(孟子)』는 현명한 사대부는 왕보다 고귀해야 하며, 실제로 왕의 복종을 요구해야 한다고 명문화한다. 그 대신, 왕은 교사/신하에게 가야하고 그를 최고의 존경으로써 대해야 한다. 게다가, 『맹자(孟子)』에서는 만약 군주가 간언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신하는 사임해야 한다고 진술하는데, 이는 왕이 그의 지시에 복종하는 한에서만 신하로서 복무할 것임을 의미한다

참고 자료

조원일, 『고대중국의 사유세계』, 학문사, 2007
마크 에드워드 루이스 (최정섭 역), 『고대 중국의 글과 권위』, 미토, 2006
신정근, 『동중서 - 중화주의의 개막』, 태학사, 2006
임태승, 『유가사유의 기원』, 학고방, 2004


《참고논문》

홍승현, 「고대 중국 예제 연구의 경향과 과제」『중국사연구』 Vol.36, 중국사학회, 2005
윤사순, 「유학의 변천과 그 정체성의 문제」『공자학』 Vol.7 No.1, 한국공자학회, 2000
황희경, 「동중서 철학의 과학적 성격과 이데올로기적 성격」『현상과 인식』Vol.14 No.1, 한국인문사회과학원,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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