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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기록 10대 수난사

저작시기 2008.09 |등록일 2009.03.28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500원

소개글

고조선 기록 10대 수난사

목차

1.고구려 동천왕 18년(224) 위나라 장수 관구검이 고구려 수도 환도성을 침공하여 많은 문 헌들을 소각하였다.
2.백제 의자왕 20년(660)나당 연합군의 침공으로 사자성이 함락되면서 사고가 소실되었다.
3.고구려 보장왕 27년(668) 당나라 장수 이적이 평양성을 공격하여 전적을 모두 탈취하였음.
4.신라 경순왕 원년(927) 후백제의 견훤이 경애왕을 치고 신라책을 전주(완주, 후백제 수도)로 옮겼다가 왕건에게 토벌당할 때 방화 소각됨.
5.고려인종 4년(1126) 금나라에 서표를 바친 후 주체 서적은 철수해 감.
6.고려 고종 20년(1233) 몽고난으로 흘필렬에 의해 소각됨. 삼한고기, 해동고기가 이때 없어짐.
7.조선 태종 11년(1411) 오부학당을 송나라 제도에 의하여 설치하면서 유교를 장려하고, 비교유학 서적 일체를 소각함.
9.병자호란(1636)때 아까운 사서들이 수없이 잿더미가 되어 버림.
10.일본강점(1910) 이후 일본이 식민지 교육정책(조선사편수회)으로, 군경을 동원하여 탈거, 개조 혹은 소각해 버림.

본문내용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삼국시대까지 수천년 동안 역사 문헌을 많이 쓴 문화민족이다. 중국 송(宋)나라 사람으로 고려에 사신으로 왔다가 (1123) 쓴 서긍의 <고려 도경>에 고려 왕실의 도서관에 소장된 수만권의 장서를 보고 놀라와 한 기록이 있을 정도 이다. 고 병익에 의하면 심지어 송나라에서 고려에게 자기네의 없어진 책을 구하려고 했던 정도 하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사료가 적은 데는 정치적 사유로서 10대 수난사를 들 수 있다.

1.고구려 동천왕 18년(224) 위나라 장수 관구검이 고구려 수도 환도성을 침공하여 많은 문 헌들을 소각하였다.
관구검은 위나라의 장수로 자는 중공. 두 차례 고구려를 침공하여 한때 고구려의 국기를 위태롭게 하였다. 242년(고구려 동천왕 16) 고구려가 위의 랴오둥 지방을 공략하여 쌍방 간에 공방전이 벌어지자, 유주자사 관구검이 현도군의 근거지에서 1만명의 군사를 이끌고 침입하였다. 침입년도는 <삼국사기>에서는 246년으로 <관구검기공비>에는 244년으로 기 록되어있다. 동천왕은 보병과 기병 2만을 이끌고 비류수가에서 맞붙었다. 이 전투에서 고 구려군이 크게 승리하여 위나라의 6천의 군사를 사상케 하였다. 여세를 몰아 동천왕은 진 격했지만 관구검의 결사 항전에 1만 8천의 병사를 잃고 패퇴하였다. 이로 인해 동천왕은 겨우 1천의 병사를 이끌고 환도성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후 관구검은 환도성 점령하고 환도성에 있는 많은 문헌과 문화재를 무참하게 불사지르고 약탈을 일삼았으며, 한편 동천왕은 남옥저로 달아난다. 이를 안 관구검은 현도태수 왕기를 시켜 추격케 하였다. 신하 밀우가 결사대를 이끌고 항전하는 사이 동천왕은 남쪽 낙랑 지 역까지 후퇴하였다. 추격병의 추격이 이어지자 유유가 거짓 항복을 하는 척하다 위나라 군 의 장수를 죽였다. 유유도 그 자리에서 죽는다. 이 일로 인해 위나라 군은 혼란을 일으키 고 이를 틈타 동천왕이 기습하여 승리를 거둔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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