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소크라테스의 지덕복에 대해서 서술 하시오0k

저작시기 2009.03 |등록일 2009.03.03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4페이지 | 가격 2,500원

소개글

위 자료 요약정리 잘되어 있으니
잘 참고하시어 학업에 나날이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

목차

소크라테스의 지덕복에 대해서 서술 하시오0k

1. 소크라테스의 사상
1) 소크라테스의 철학의 중심적 과제는 "영혼의 배려"라는 것이었다
2) 문답법
3) 귀납법사용
4) 지행합일설 (知行合一說)
(1) 너 자신을 알라
(2)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
(3) 대화법

2. 소크라테스의 지덕복
1) 철학사상
2) 영향을 준 철학사상
3) 지덕복

본문내용

소크라테스(Socrates, B.C. 470?∼399)는 소피스트(Sophist)들에 맞서 윤리적 회의주의나 상대주의를 극복하려고 노력하였다. 당시 소피스트들은 변론술과 수사학을 가르쳤던 사람들로서, 인간의 사고 능력으로는 절대적 진리를 파악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즉, 이들은 감각적 경험이나 개인의 유용성에 따라 모든 가치를 판단하고, 보편적 진리에 대하여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소피스트들에게 윤리적 행위의 주체는 인간이었지만, 그들은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상대주의적이었으며 윤리관과 진리관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소피스트들의 생각은,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라는 말에 잘 나타나고 있는데, 이 말은 인간의 감각적 경험과 그 유용성이 모든 사물을 판단하는 기준이므로 절대적인 진리나 행위의 기준은 없다는 주장을 함축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사람으로 부친은 조각사, 모친은 산파였다고 한다. 젊었을 적에는 종래의 자연학을 배웠지만, 자기의 마음속에 영적존재의 소리(그것은 적극적으로 어떤 일을 하라고 권장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나쁜 일을 하려고 할 때, 그것을 못하도록 막는 것이었다고 한다.)를 듣는다고 하는 종교적 경향을 겪고 있었던 그는 자연학적 연구에는 만족할 수 없었고, 자연학적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인간의 영혼에 그의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소크라테스가 35세에서 40세쯤 되었을 무렵, 그의 제자 한사람이 델포이의 신전에서 `소크라테스 이상의 현자가 있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신탁을 구했던 바, 소크라테스 이상의 현자는 없다는 신탁이 내렸다. 소크라테스는 스스로 무지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신탁이 내린 데에 놀라서, 그 의문을 풀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소크라테스는 그 당시 지자(知者)라고 생각되고 있던 사람들을 방문하지만, 그 결과, 그들도 소크라테스 자신과 꼭 같이 무지할 뿐이었다. 다만 자신은 스스로의 무지를 알고 있으므로 그들보다는 지자일 것이다 라는 해석에 이르렀다. 이리하여 그는 거리에 나가 아무나 붙잡고 그와 문답식 대화를 함에 의해 그의 무지를 자각시키고 참된 지식을 얻으려는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그의 임무로 삼았던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