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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조선시대 농민의 경제생활

저작시기 2008.04 |등록일 2009.02.27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0페이지 | 가격 3,000원

소개글

한국사회경제사 시간에 A를 받은 레포트입니다...
참고하시면 좋을거에요

목차

1.양반지주의 생활

2.조선 초.중반기의 농민의 경제생활
① 조선 초기 토지제도
②농민의 경제생활

3.16세기 농민의 부담
① 수취제도의 문란

4.수취제도의 개편
①수취 제도의 개편 배경
②전세제도의 개편
③공납제도의 개편
④군역제도의 개편

5.조선 후기 농업 생산 증대와 경영 변화
①자본주의 맹아
②양반 지주의 농장 경영 변화
③농업 생산력의 증대

6.농촌 사회의 분화
①광작 농업의 등장
②지대의 변화
③농민의 계층 분화
④19세기 농민들의 고달픈 삶

7.결론

본문내용

1.양반지주의 생활
양반 소유의 토지는 비옥한 토지가 많은 삼남지방, 경상, 전라, 충청도 지역에 집중되었고 규모가 커서 농장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양반들은 이런 자기 소유의 토지를 자기 소유의 노비를 시켜 직접 경작하였다. 농장이 거주지에 위치하여 노비를 직접 거느리는 경우는 생산량 전액을 거두고, 거주지에서 먼 농장이라면 외거노비에게서 생산량의 1/2에 해당하는 지대와 별도의 노비신공을, 노비의 노동력만으로 경작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농장이라면 병작반수의 형태로 주변 농민에게 소작을 시켰다. 이 경우 1/2의 지대를 거두고 이중에서 조세를 납부하였다. 양반들의 농장은 15C 후반에 더욱 증가되었으며, 16C의 직전제 폐지 이후에는 지주. 전호제가 일반화 되었다. 양반들은 지주로서 경제적 풍요를 누린 것에 비해 농민들은 소작인(전호)으로 전락하는 것이 농촌사회의 일반적 경향이었다. 자영농민이라 할지라도 자기 토지에서의 소출만으로는 부족해 소작을 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농민의 몰락은 상대적으로 지주의 지위와 발언권을 더욱 상승시켜 당연히 양반 지주가 부담해야 하는 조세마저 소작농에게 전가하는 일이 일반화되어갔다.

2.조선 초.중반기의 농민의 경제생활
① 조선 초기 토지제도
조선의 토지제도는 과전법(科田法)을 토대로 하였다. 과전법에 의해 관료들은 등급에 따라 일정한 토지를 국가로부터 지급받았으며, 퇴직자들도 별도로 정해진 바에 따라 토지를 받았다. 그러나 이들 토지를 실제로 경작한 사람들은 농민들이었고, 관료들은 토지를 경작하는 농민들로부터 경작의 대가로 조(租)를 거두어 생활하였으며, 국가는 다만 관료가 농민들의 경작권을 마음대로 빼앗지 못하게 보호하였다. 이러한 과전은 1대에 한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공신전(功臣田)․휼양전(恤養田)․수신전(守信田) 등은 자식이나 아내에게 세습되기도 하였다.
한편, 왕권이 확립되고 국가활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관료의 수와 세습되는 토지가 늘어나, 새로 관료가 되는 사람에게 지급할 토지가 부족하게 되었다. 이에 세조는 과전법을 폐지하고 현직 관료에게만 토지를 지급하는 직전법(職田法)을 실시하였고, 성종 때에는 관수관급제(官收官給制)를 실시하여 국가의 토지지배권을 강화하였다. 그러나 실제는 토지의 사유화가 진전되어 많은 양반관료들은 농장을 소유하고 그들의 경제기반을 확대시켜 나갔다.

참고 자료

박천욱,<교과서 보다 쉬운 독학국사>,일빛,2006
최완기,<역사의 갈림길에서 고뇌하는 조선 사람들>,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4
안길정,<관아를 통해본 조선시대 생활사 하>,사계절, 2000
장두환,<조선시대 생활사2>,역사비평사,2000
그 외: 인터넷 자료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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