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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적 측면을 염두에 둔- 신라가 멸망하고 호족들이 대두하게 된 배경 고찰

저작시기 2007.04 |등록일 2009.01.23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8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한국사 수업 시기의 리포트입니다.

목차

I. 들어가며
II. 본 론: 나말여초의 사회 경제적 변동
1. 6두품세력이 대두한 사회경제적 배경
2. 호족세력이 대두한 사회경제적 배경
1) 락향귀족 출신의 호족
2) 군진세력 출신의 호족
3) 해상세력 출신의 호족
4) 촌주 출신의 호족
3. 사상계의 변화를 촉구한 사회경제적 배경
1) 불교사상의 변화
2) 유교사상의 변화와 유․불․선 3교의 융합

III. 나가며

본문내용

유교와 불교가 서로 통하는 것이라는 최치원의 주장은 나말의 유교사상이 변해가는 과정을 엿보게 한다. 나말의 유교는 불교 외에도 老莊思想 및 道敎의 영향을 받아 그 정신세계의 변동은 결국 3교의 융합된 觀念形態로 나타났다. 신라 하대사회에 신선사상의 전개는 신라 고유의 土着사상이나 신앙에 근거하였으며, 유교나 불교신앙과 융합하여 유행한 듯하다. 신라 하대에 유․불․선 3교의 융합사상은 유․불이나 유․선 또는 선․불 등의 교의가 서로 교섭을 가지면서 조화를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세련된 융합논리를 갖추면서 전개되었다.

III. 나가며
신라 하대는 한국 고대사회의 종말기로 새로운 고려사회의 출범을 위한 진통기였다. 진골왕족의 자기항쟁으로 골품제의 권위를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결국 고대적 신분제도인 골품제도가 무너지면서 6두품 계열의 성장을 가져왔다. 중앙정계의 혼란과 골품제도의 동요에 따른 지방세력의 등장은 낙향귀족 촌주계열을 비롯하여 해상 군진세력 등 이른바 豪族勢力의 할거로 나타났다. 이들은 자신의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신라를 분해하였으며, 전통적인 族的紐帶를 타파함으로써 농민규합의 길을 열게 하였다. 특히 새로운 지배세력으로 성장한 호족들은 자신의 지위를 정당화시킨 풍수사상과 선종불교 및 유교적 소양을 통해 지방문화를 한 차원 높여 주었고 나말의 정치적 혼란을 극복할 수 있었다. 또한 6두품 계열의 탈골품적 풍조는 유교 정치이념의 조류와 함께 社會改革의 방향을 제시하여 고려왕조 건설에 기여할 수 있었다. 후삼국의 흥망 과정에 궁예와 견훤은 신라의 권위와 전통을 해체하는 선구적 역할을 함으로써 왕건 등장의 배경을 이루었다. 왕건은 다양한 방법으로 호족세력을 포섭하고, 유교 정치이념의 추구, 선종의 유행, 유․불․선 3교의 융합 등 사상계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여 나말의 혼란을 수습하고 새로운 고려왕조를 건설하여 고대적 체제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고려사회의 출발은 단순한 왕조의 교체를 넘어 고대에서 중세로의 커다란 사회적 변화를 초래한 변혁기였다.

참고 자료

하일식,『신라 집권 관료제 연구』,혜안, 2006김갑동,『나말여초의 호족과 사회변동연구』, 1990,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박한설,「고려의 건국과 호족」,『한국사』12,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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