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일제시대와 미군정시대의 부동산정책

저작시기 2008.03 |등록일 2009.01.09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2페이지 | 가격 500원

소개글

일제시대와 미군정시대의 부동산정책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조선토지조사사업

2. 조선시가지계획령 실시

3. 미군정 시대의 토지정책(~건국초기의 토지정책)

본문내용

1. 조선토지조사사업
우리나라에 근대적인 토지제도가 도입된 것은 1894년 갑오경장 이후로서 개항과 더불어 일본이 서서히 한국에 진출하면서 근대적인 문물이 도입되고, 토지와 관련한 제도에 있어서도 근대적인 변화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근대적 제도의 도입 이전에 일제의 한국 토지 약탈이 먼저 시작되어 1876년 개항 직후에 일본상인들은 항구내의 일부 토지를 빌려 쓰는데 그쳤다. 그러나 그들의 활동범위가 항구 밖으로 확대됨에 따라, 곡물을 사들이기 위해 조선 농민들에게 돈을 빌려 주었다가 농토를 대신 차압하기도 하고, 농토를 저당잡고 고리대금업을 하다가 그것을 빼앗기도 하여 점차 토지 소유를 확대해 갔다.
일제는 1912년「조선토지조사령」을 발표하였다. 조선의 토지실태를 정확히 파악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이 조사는 내면적으로는 근대적 토지제도가 미비된 상태에서 소유․관리․운용되고 있던 조선 내의 많은 토지를 일본인이 취득할 목적으로 추진되었다.
물론 일제에 의해 시행된 이러한 토지조사사업은 과거에는 파악이 거의 불가능했던 음결 등 감추어진 토지를 단 한번의 조사로 파악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일제의 토지조사사업과 토지관련제도의 도입은 그 동기가 토지현황을 파악하여 식민지를 약탈할 목적이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이 사업은 왕실재산이나 소유권이 확실하지 않았던 임야, 하천부지 등을 거의 모두 국유지로 편입시킨 후 이를 일본인에게 농장용지로 싼 값에 불하함으로써 일본인의 토지소유를 촉진시켰다. 이로 인해 산림의 경우, 전체면적의 58%가 일본인의 소유로 넘어갔다. 이러한 부정적인 측면은 일제가 식민지를 약탈하기 위한 차원에서 토지조사령을 시행하였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 조선시가지계획령 실시
일제는 1934년 도입된 조선시가지계획령으로 토지조사사업과 더불어 토지에 대한 각종의 행위규제를 수반하는 계획제도를 도입하였다. 이는 한국에 최초로 서구적 개념의 도시계획이 도입되었던 것으로 이제까지 마음대로 자기 토지를 이용할 수 있었던 토지소유자들은 커다란 변화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참고 자료

이태교,「토지정책론」(법문사, 2001), pp.249~250.
이태교,「전게서」, pp.252~253.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