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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종군위안부들의 고통

저작시기 2008.11 |등록일 2009.01.08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일제시대 종군위안부들의 고통에 대해서 쓴 글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며
Ⅱ. 본론 - 종군위안부의 고통
1. 밝혀진 역사의 죄
2. 피해 여성들의 상황
3. 신체적 피해와 정신적 피해
4. 종군 위안소의 설치
5. 위안소 설치의 목적
1) 사기 진작과 군기 유지
2) 문화, 오락 시설의 결핍과 병사들의 소 외
3) 성병 예방책
6. 인도(人道)에 대한 죄
7. 전후 책임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Ⅱ. 본론 - 종군위안부의 고통
1. 밝혀진 역사의 죄
1991년 여름, 종군위안부 출신의 김학순 할머니가 한국에서 이름을 밝히며 나섰다. 일본의 패전 이후 종군위안부의 존재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지만, 피해 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체험을 밝히고 나선 경우는 처음이었다. 이 일로 인해서, 용기를 얻은 수많은 피해 여성들이 한국과 북한, 대만,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속속들이 이름을 밝히며 나섰다. 이로 인해서 자신들의 죄를 덮어놓으려고 무단히 애를 쓰던 일본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 국가의 매춘 관리 사실과, 아시아의 여성들을 성노예로 전락시켰던 실태가 밝혀지게 되었다.
피해여성들의 증언 중에는 도저히 그냥 넘겨 버릴 수 없는 일본군의 행위가 많다. 그것은 성노예로 취급했던 여성들을 패전 전후에 각지에서 학살했다는 사실이다. 많은 피해자들이 집단 학살될 뻔했던 일들이나 옆에서 지켜본 광경들을 증언하고 있다. 일본의 집단 학살의 만행은 그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전쟁에서 패한 상태에서 자신들이 저질러온 만행이 세계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그러한 증거 인멸의 노력은 우리에게 더 큰 분노와 상처를 안겨 주었다.
위안부 출신의 할머니들은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 모여 집회와 시위를 하고 있다.

일본 군인한테 맞고 채인 자리가 지금도 아픕니다. 아파서 잠을 제대로 못 잘 지경이므로, 돈이 조금 모이면 병원에 다녀야 하는 신세입니다. 몸이 이렇게 안 좋지만 수요일 항위 시위에는 꼭 참가합니다. 일본 정부에 대한 사죄와 보상을 바랍니다. - 노정자

시위와 투쟁은 젊은 사람들에게도 힘겨운 행동이다. 하지만 많은 피해 할머니들이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 모이고 있다.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매주 그들을 대사관 앞으로 불러내게 하는 계기는 무엇일까? 그 속에는 피해 여성들의 울분에 찬 심경이 바탕이 되고 있을 것이다.

참고 자료

『종군 위안부들의 태평양 전쟁』, 야마다 메이코, 쑥맥, 1995
『종군위안부』, 이토 다카시, 눈빛,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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