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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차이나타운 답사기

저작시기 2009.01 |등록일 2009.01.06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5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인천 차이나타운 답사기 및 해외 차이나타운 성공사례

목차

(1) 서론 : 인천 차이나타운을 선정하게 된 배경
(2) 본론
1) 인천 차이나타운의 역사
2) 차이나타운의 위치와 교통편
3) 이 지역을 답사하면서..
(3) 결론
* 기타 : 성공한 차이나타운의 사례로 꼽히는 ‘요코하마 차이나타운’

본문내용

(1) 서론 : 인천 차이나타운을 선정하게 된 배경
차이나타운이란 일반적으로 다른 나라에 형성된, 자연적․인위적으로 중국인들이 모여 살게 되면서 생기게 된 마을을 의미한다. 차이나타운은 세계 곳곳에 퍼져있다. 차이나타운은 싱가포르 등 화교의 주요 거주지뿐 아니라 미국ㆍ일본ㆍ캐나다 등의 주요도시에 자연적 혹은 계획적으로 건설돼 화상의 삶의 터전이자 현지 투자 및 사업협력의 허브(Hub)로 각 나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중화권의 손님을 끌어들이는 주요 관광자원으로 외화벌이에도 기여하고 있다. 뉴욕ㆍLAㆍ밴쿠버ㆍ싱가포르 등의 차이나타운은 15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며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이들 지역의 차이나타운은 오래전 조성돼 교통이 편리하고 수백여 곳의 레스토랑을 비롯해 호텔ㆍ쇼핑몰 등이 밀집해 있어 소비자 및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양필승 건국대 사학과 교수는 “차이나타운은 화교의 자존심을 높이고 경제적 성장을 뒷받침했으며 그 나라에는 대규모 관광객과 투자유치를 이끌어냈다”고 평가했다.
전 세계 화교인구는 6000만 명이며 이들이 보유한 유동자산만 2조 달러에 이르고 동남아시아 경제의 70%가량을 장악할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역할의 선두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차이나타운이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고 미국 내의 많은 유명인들,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이 중국문화에 심취했다는 기사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하지만 한국은 화교자본이 정착하지 못한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일 만큼 외국인에 대한 견제가 심하다. 1930년대에서 50년대에까지 대구에서는 그 지역 경제의 큰 축을 담당했던 것이 화교들이었으며 이들은 물품판매업에 352명, 중국음식점에 66명이 종사했다. 당시 대구지역의 전체 포목상은 815명으로 이 가운데 한국인이 550명(67.5%)인데 비해 화교가 217명(26.6%)으로 화교경제의 핵심역할을 했다. 일본인 포목상은 47명(6.8%)이었다. 현재 대구 중부경찰서∼만경관∼약전골목 거리에 화교가 운영하는 상점이 집중돼 ‘대구의 차이나타운’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당시의 영광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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