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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각사(金閣寺) -로쿠온지(鹿苑寺)

저작시기 2008.11 |등록일 2009.01.05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금각사(金閣寺) -로쿠온지(鹿苑寺), 킨카쿠지
금각사에 관한 역사와 인물, 관광을 할 때 로쿠온지 절 내의 여러가지에 대해 조사한 것입니다.
리포트라기 보다는 조사한 것이기 때문에 서문과 결론은 없습니다.
하지만 왠만한 관광 서적보다 많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목차

1. 아시카가 요시미쓰
2. 기타야마 문화의 발전
3. 금각사(金閣寺) -로쿠온지(鹿苑寺)
1) 소설 『금각사』와 미시마 유키오
2) 로쿠온지

본문내용

2. 기타야마 문화의 발전
교토는 천황과 귀족의 생활 근거지였기 때문에, 전통이 온전하게 보존된 공간이었다. 그래서 무로마치 문화는 귀족문화와 무가 문화가 융합되는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또 무로마치 시대에는 선종이 번성하여, 교토의 오산을 비롯한 많은 사원이 건립되었다.
특히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 시대에 정권이 안정되면서 막부의 권위와 슈고다이묘의 실력을 배경으로 호화로운 성향의 문화가 나타나게 된다. 이를 금각사(金閣寺)로 대표되는 기타야마 문화라고 부른다. 이 문화는 귀족문화와 대륙문화가 무사의 문화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선종을 중심으로 하는 송, 원나라의 문화가 이 시대의 문화를 더욱 특색 있게 하였다. 일본풍의 회화가 저조 되었고 중국풍의 수묵화가 유행하였다. 상공인과 농민, 그리고 잇키의 열정이 문화면에도 반영되었는데 노, 교겐, 렌가 등은 귀족, 무사, 민중의 구별 없이 인기를 끌게 되었다.

3. 금각사(金閣寺) -로쿠온지(鹿苑寺)
금각사는 1220년 사이온지 킨츠네 가문의 별장이었던 곳을 1394년 무로마치시대의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사들인 것이다. 아시카가 요시미쓰는 이곳을 1397년 기타야마 별장으로 개축, 금각 전각을 중심으로 정원과 여러 건물들을 극락정토로서 현세에 표현하였다.
1408년 요시미쓰가 죽은 뒤 그의 유언에 따라 선종의 선사로서 로쿠온지라 불리게 되었다. 로쿠온지란 요시미쓰의 법명인 로쿠온인전에서 2자를 따서 로쿠온지라고 하였다. 도쿠가와 시대에 이르러 대부분의 건물은 불에 타 소실되거나 이전되었으며 금각만이 유적으로 남았다.
1950년 7월 2일 금각사는 정신병을 앓던 수도승의 방화로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불을 지른 21살의 수도승은 “세상을 깜작 놀라게 하고 싶었다.” “사회에 대한 복수를 위해서다”라고 범행동기를 밝혔다. 이후 일본 극우를 대표하는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가 1956년 『금각사(金閣寺)』를 소설로 출간시켰다.
금각사가 불탄 뒤 일본에서는 곧바로 국민모금 운동이 벌어졌다. 당시 돈으로 3천만엔에 이르는 복원 비용이 마련됐다. 3년 간의 작업 끝에 금각은 1955년 복원됐다. 메이지 시대인 1903년 대대적인 수리를 거치는 과정에서 발견된 상세한 도면 덕분에 비교적 원형에 충실하게 이전 모습을 되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처음 복원된 모습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현재와는 사뭇 달랐다. 서둘러 복원 탓에 군데군데 금박이 떨어져나가 ‘금각’이 아니라 `흑각` 이라는 야유까지 받기도 했다. 결국 일본 문화재당국은 1987년~88년 7억4천만엔의 거금을 들여 2차 복원공사에 들어갔다. 가로, 세로 약 10cm의 금박 20만장을 접착력이 강한 칠로 붙였다. 이때 금박이 600년 이상 지탱할 수 있도록, 보통 금박보다 5배나 두꺼운 1만분의 5mm짜리를 붙이는 난공사를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4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지정되었으며 1998년에는 제3차 복원공사를 단행해 누각 지붕의 널을 전면 교체했다. 이후 매년 2층과 3층에 금박을 입히는 공사를 한다.

참고 자료

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웅진 지식하우스, 2008
일본전통 문화론, 박전열외, 한국방송대학교 출판부, 2003
일본고대, 중세사 - 구태훈, 재팬리서치21, 2008
http://www.kippo.or.jp/culture_k/archives/kyoto/objec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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