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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역사적 배경과 해결을 위한 노력

저작시기 2009.01 |등록일 2009.01.03 | 최종수정일 2017.01.05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5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최근 국제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의 원인을 살펴보고 그 해결 방법을 생각해보자.

목차

1. 분쟁원인
1) 민족
2) 종교
3) 영토
4) 에너지
2. 결과
3. 팔레스타인의 투쟁
4. 레바논vs이스라엘
5. 이슬람의 좌절감
6. 해결방법

본문내용

3. 영토 (유대인 vs 팔레스타인)
세계 1,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서구 열강에 의해 인위적으로 획정된 국경은 영토 싸움을 부채질하는 요인이 된다.
AD77년 유대는 로마에 의해 마사다 전투에서 완전 패망하고 지도상에 이스라엘은 흔적도 남지 않았고 이 민족들은 뿔뿔이 흩어져 각 지역에서 시나고그를 만들어 살아왔다.
2차 대전이 한창일 무렵 이스라엘 민족지도자 (대표 : 벤구리온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 들은 영국과 협상을 시도하여 전쟁비용을 지원해 주는 조건으로 종전 후 옛 유대땅에 이스라엘 건국을 약속받게 되었고 이 사실을 안 독일의 히틀러는 가공할만한 유대인 학살을 감행하게 되었다.
영국과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이 사실을 알고도 수수방관 하게 되었으며 전쟁이 끝나자 당시1948년 영국 정부는 이스라엘에게도 승낙을 하게 되었고 팔레스타인에게도 반대도 승낙도 아닌 어중간한 입장을 취한 사이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영국과의 협상 중에 각지에 흩어진 유대인들을 팔레스타인 땅에 강제 이주를 감행하게 되었다.
중동이 `세계의 화약고`라는 오명을 쓰게 된 뿌리는 이렇게 1948년 영국을 주축으로 한 강대국들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이스라엘의 건국에서 찾을 수 있다. 이스라엘의 건국은 2천 년 가까이 나라를 잃고 전 세계를 유랑하던 유대인들에게는 실지 회복이었지만, 팔레스타인 땅에 살아온 원주민(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삶의 터전을 잃는 비극이었다.
유엔 총회는 팔레스타인 땅에 대한 영국의 위임통치 종결 6개월을 앞둔 1947년 11월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가결해 팔레스타인 모든 지역(2만 6천323㎢)의 56.47%를 이스라엘에, 42.88%를 아랍국가에, 나머지 0.65%에 해당하는 예루살렘을 `국제관리지구`로 할당했다.
당시 팔레스타인 전 지역의 대부분인 87.5%를 소유하고 있던 아랍인들은 당연히 이 분할안을 거부했고, 유대인들은 이를 수용해 이듬해 5월14일 건국을 성사시켰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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