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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왕조 500년, 고려왕조 역사읽기

저작시기 2008.12 |등록일 2009.01.02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500원

소개글

고려왕조 500년 서책 관련 단원정리
고려왕조 역사읽기 써머리

목차

없음

본문내용

9. 고려는 황제의 국가임을 자처했는데, 고려가 황제국 체제를 지향한 증거들과, 그러한 자부심(자존의식)은 어떤 배경에서 나온 것인지 설명하라

- 고려는 대외적으로는 중국을 천자의 나라로 인정하고 그 아래 제후의 지위를 갖는 제후국 체제이다. 사실 정변을 일으켜 고려왕조를 개창한 태조 왕건은 등극직후 독자적 연호인 "천수"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후당의 연호인 "동광"을 쓰게 되지만 대내적으로는 황제국가 체계를 갖추고 있다. 바로 이점이 조선왕조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먼저 정부조직을 살펴보면 고려는 중서성,문하성,상서성의 3성(省)과 이부,호부,예부,병부,형부,공부의 6부(部)를 두어 3성6부제로 정부를 운영 하였다.

유교에서 `성(省)`이나`부(部)`의 호칭은 천자국에서만 사용하는 것으로 제후국에서는 사용할 수가 없다. 또한 `부(部)`는 3 ~ 4품 정도의 관청인 반면 조선왕조에서 사용한 6조(曹)의 `조(曹)`는 `부(部)`보다 품계가 낮다. 아울러 `성(省)`은 1 ~ 2품에 해당되는 관청이다.

때문에 훗날 고려를 예속시킨 원나라는 고려의 정부조직 호칭에 대해 모두 바꿀것을 요구 한다. 예컨대 3성(省)을 없애고 이들을 합쳐 첨의부(僉議府)라 하고 6부(部)를 4개의 사(司)로 통합해 버린다. 한편 고려는 임금이 명령을 내릴때 사용하던 용어로 `조서``제서``칙서`라는 말을 사용 했다. 이 역시 모두가 천자국가에서 쓰는 말이다.
가장 확실한 증거로는 고려가 금나라에 국서를 보낼때 스스로 황제라고 한 것이다 이는 곧 고려가 중국의 천자를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동등하게 황제국가를 견지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된다. 고려의 대표적 문호의 한사람인 이규보 역시 1209년 연등회 의식에 대한 축시에서 고려의 임금을 천하를 일가로 만든 중심적 존재라고 하였으며 이승휴의 [제왕운기]에도 보면 `대금 황제가 고려국 황제에게 글을 보낸다`라는 인용구절 대목이 있는데 이역시 금나라 역시 고려의 임금을 황제로 인정했다는 명백한 증거로 볼 수 있다.

참고 자료

고려왕조 5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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