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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삼경(三京) 건설과 천도론(遷都論)

저작시기 2008.12 |등록일 2009.01.01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3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고려시대 천도에 관해 고찰한 글입니다. 묘청의 서경천도 말고, 정종의 서경천도 추진운동, 숙종의 남경천도 추진 운동, 공민왕~공양왕 시기 까지 천도 논의 등 고려시대 추진하던 다양한 천도 운동에 대해 고찰한 글입니다.

목차

들어가는 말

1. 고려의 3경(三京) 설치

2. 고려 역사에서의 천도(遷都) 논의
1) 서경 천도 논의
2) 남경 천도 논의
3) 고려 말 천도 논의 및 시도

맺음말

본문내용

풍수지리란 산과 물의 형세를 살펴 도읍지, 주택, 묘지 등을 선정하는 일종의 지리학이다. 도읍지나 주택 같이 살아있는 사람들이 활동하는 것을 양기(陽基) 또는 양택(陽宅)이라 하고, 죽은 사람이 묻히는 묘지를 음택(陰宅)이라 한다. 고려시대에는 음택풍수보다 양택풍수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풍수지리설에는 땅의 활력 여부에 따라 국가나 개인의 장래에 영향을 미친다는 ‘지기쇠왕설(地氣衰旺設)’이 있는데, 이와 관련된 기록으로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 자세히 나온다. 『고려도경』의 기록을 보면 “고려는 본디 글을 알아 도리에 밝으나 음양설에 구애되어 꺼리기 때문에, 그들이 나라를 세울 때에는 반드시 그 형세를 관찰하여 장한 계책을 세울 수 있는 곳이라야 자리 잡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풍수지리설이 도읍지를 선정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고려 역사를 살펴보면 많은 천도(遷都) 논의가 있어왔는데 천도를 주장하는 이들은 한결 같이 이 지기쇠왕설(地氣衰旺設)을 근거로 천도의 정당성을 피력하기도 하였다.
고려는 풍수설에 입각하여 3경(三京, 개경, 서경, 남경 혹은 동경)이나 3소(三蘇)를 설치 ․ 경영하기도 하였다. 역대 고려 왕들은 풍수지리설에 입각하여, 이러한 곳들에 궁궐을 조성하고 순주(巡駐)하여 국업(國業)을 연장시키려 하였다.

참고 자료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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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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