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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조가 원문 해석, 자료

저작시기 2008.06 |등록일 2009.12.30 한글파일한글 (hwp) | 3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이 자료는 제가 국문학강독 수업을 듣고 선생님이 해 주시는 수업 내용과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황조가에 대해 정리한 것입니다. 원문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것을 수집해서 진짜 원문과 철저하게 비교해서 오타 모두 수정했구요. 해석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했답니다. 각주도 꼼꼼하게 달아서 황조가에 대한 여러가지 관점과 이설들을 살펴보기 좋으실꺼에요^.^

목차

1. 원문과 해석
2. 각주
3. 유리왕이 첫 도읍지인 졸본을 떠난 이유와 해명태자의 죽음

본문내용

黃鳥歌
황조가* 유리왕이 첫 도읍지인 졸본을 떠난 이유와 해명태자의 죽음
태자인 유리는 아버지의 왕위를 계승한 뒤, 당시 주변의 성읍국가들을 병합하고 변방에 있던 선비족을 복속시키는 등 영토확장에 큰 성과를 얻게 되지만 주몽이 졸본지역에 오기 이전부터 먼저 자리잡고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집단들이 유리왕을 인정하지 않고 반발하고 나왔기 때문에 졸본지역에서 고구려를 다스리는 데 곤혹을 치르게 된다. 주몽이 유리를 태자에 임명하자, 이에 반발한 유리의 이복형제 비류·온조 및 그들을 따르는 무리들이 고구려를 떠나 남하하여 백제를 건국하고, 졸본지역이 본래 비류·온조의 외가인 소노부 세력이 오랫동안 다스려 왔던 곳인지라, 부여에서 갓 이주해 와서 정치적 기반이 미약했던 유리가 그들 위에서 통치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으므로 나라를 새롭게 정비하고 왕권을 강화하는 동시에 중국세력 및 부여의 공격 등에 방비하고자 국내지역으로 천도하게 된다.
유리왕은 재위 22년만에 국내(國內 : 현 중국 길림성 집안)으로 도읍을 옮기고 위나암성을 쌓았다. 하지만 이 때의 천도는 졸본 토착세력의 반발이 천도한지 6년동안 계속되었다고 한다. 왕은 기원후 9년에 졸본에서 태어나 자랐고 그곳에 외가를 둔 태자 해명이 국내로 수도를 옮긴 후에도 고향을 떠나지 않으려 하며 자신의 국내천도에 반대하고, 외교적인 갈등을 자주 유발시킨 21살의 젊은 태자 해명(解明)을 자살케 하였다.
해명태자 설화의 일부분 - 유리왕 28년(서기 9년) 봄 3월에 왕은 사람을 보내 해명(解明)에게 말하였다. “내가 천도한 것은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나라를 튼튼하게 하려는 것이다. 너는 나를 따르지 않고 힘센 것을 믿고 이웃 나라와 원한을 맺었으니, 자식 된 도리가 이럴 수 있느냐?” 그리고 칼을 주어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였다. (중략) 태자가 말했다. “지난번 황룡국 왕이 강한 활을 보냈을 때, 나는 그것이 우리 나라를 가볍게 본 것이 아닌가 하여 활을 당겨 부러뜨려서 보복한 것인데, 뜻밖에 부왕으로부터 책망을 들었다. 지금 부왕께서는 나를 불효하다고 하여 칼을 주어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시니 아버님의 명령을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 ”
마침내 여진의 동쪽 벌판으로 가서 창을 땅에 꽂고 말을 달려 찔려 죽었다. 그 때 나이가 21세였다. 태자의 예로써 동쪽들에 장사 지내고 사당을 세우고 그 곳을 불러 창원(槍原이)라 하였다.

참고 자료

네이버 카페 http://cafe.naver.com/playga.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256
네이버 백과사전, 두산백과사전, 위키백과, 《한국문학통사》조동일 1998 지식산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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