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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twain(마크 트웨인),

저작시기 2008.08 |등록일 2009.12.30 한글파일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마아크 트웨인 (Mark Twain)의 생애

목차

마아크 트웨인 (Mark Twain)의 생애

마크트웨인이 이름을 바꾼 이유

본문내용

새뮤얼 랭호온 클레멘즈(Samuel Langhorne Clemens, 1835~1910)가 본명인 마아크 트웨인(Mark Twain)은 미국 중서부의 미주리주 하니발이라는 시골에서 자랐다. 세인트루이스강 상류의 증기선의 정박소였던 이 마을은 마아크 트웨인에 의하여 전세계의 소년들의 고향땅이 되었다. 사실, 그가 태어난 곳은 서쪽으로 수마일 떨어진 플로리다라는 시골이었는데, 어린 시절 그의 부모가 버지니아에서 켄터키를 거쳐 이곳으로 이주하여 왔던 것이다. 단정하고 성실하였던 부친 존 마아샬 클레멘즈는 법률 사무소를 열고 투기 사업도 해 보았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며, 그의 어머니 제인 램프튼은 용기와 신념을 가지고 자녀들을 키웠다고 한다. 둘째 아들이었던 마아크 트웨인은 유년시절엔 허약하였지만, 성장하면서 건강해졌고 발랄한 정신과 풍부한 상상력을 지니고 있었다. 1848년 그가 열두 살 때 부친을 잃어 마아크 트웨인은 학업을 중단하고 큰 형 밑에서 견습 인쇄공으로서 일하기 시작했다.

마아크 트웨인은 1853년부터 동서부와 중서부의 여러 도시를 전전하면서 신문사에서 일하였다. 한때는 브라질에 가서 부자가 되기를 꿈꾸어 1856년엔 뉴올리안즈로 여행하였으나, 이 계획을 포기하고 고향 미시시피 지방으로 되돌아왔다. 여기서 그는 풋내기 기자로서 미시시피강을 답사했으며, 점차 강에 관심을 갖고 강 흐름이나 변화 등을 배우게 되어 수로 안내원(pilot)이 되었다. 1861년에 남북전쟁이 일어나 강을 이용하는 교통이 일시 두절되었기 때문에 그는 배를 버리고 고향 하니발로 되돌아왔다.

그 후 그는 뉴욕에서 뉴올리안즈에 이르는 미대륙에 관한 지식을 갖출 목적으로 당시 네바다주 지사의 비서였던 형 Orion과 함께 육로 여행을 떠났고, 거기서 또 캘리포니아로 갔으며 그 동안 광부․식자공 노릇을 하였으나 주로 신문 기자 노릇을 하며 생활을 보냈다. 최후로 그는 퀘에쿼시티호가 유럽과 팔레스타인을 방문하기 위해 지중해 순항으로 나갔을 때 〈알타 캘리포니아〉지의 보도 기자로서 동선에 편승하였다. 이리하여 34세의 마아크 트웨인은 어느 외교관이나 직업 여행가들보다 더 많은 세계를 보아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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