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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 대한 고찰

저작시기 2009.12 |등록일 2009.12.29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신문에 대한 고찰

목차

●신문
●신문의 역사
●한국의 신문역사
●현황
●신문의 역활
●제작
●편집
●인쇄
●전자신문

본문내용

●신문의 역사
신문의 원시적 형태는 로마시대의 《악타 디우르나 Acta Diurna》》라 할 수 있는데, 이는 당시 원로원의 의사록이었던 《악타 세나투스 Acta Senatus》와 평민원의 의회상황 등의 발표물을 총칭하는 것이다. 《악타 디우르나》는 집권자가 자신의 행정방침과 포고령을 대중에게 알리고자 발간된 것이고, 《악타 세나투스》는 선언문, 포고문, 원로원의 정치적 결정사항 등을 알리기 위해 별도로 발간되었다. 《악타 디우르나》에서는 검투경기, 주술, 저명인사의 경조사, 공직 인사 등의 소식이 실리는 등 내용면에서 근대적 신문의 형태를 띠었지만, 집권자들이 자의로 선택한 뉴스만을 실은 관보의 일종이었다.
중국에서도 8세기경에 당나라 수도 장안[長安]에서 《저보(邸報)》라 부른 정부 발표물의 보도기관이 있었고, 송(宋)나라 후기에는 《조보(朝報)》라 부른 관보를 발행하였다. 여러 왕조를 거치면서 제호와 형식이 변하고, 인쇄방식도 필사본에서 17세기부터 목판본으로 바뀌었지만 《저보》는 1,000년 이상 지속되었다. 청대(淸代)에 발간된 《경보(京報)》는 그 후신이라 할 수 있다.
로마시대 이후 귀족들 사이에는 뉴스의 교환이 성행하여 서한신문이 나오게 되었고, 독일에서도 같은 현상이 있었다. 13, 14세기부터 15, 16세기에 걸쳐서 르네상스·종교개혁·터키군(軍)의 유럽 침입, 신대륙 발견 등의 여러 사건이 일어나 뉴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제후와 도시, 대학 등에서도 뉴스를 수집하는 일이 성행하였다. 또한 상인들도 상업상의 필요에 따라 각지의 뉴스를 수집하였다. 유명한 것으로는 독일 푸거가(Fugger 家)의 〈푸거 차이퉁겐 Fugger Zeitungen〉이 있다. 서한신문이 발전하여 규칙적인 필사신문(筆寫新聞)도 발행하였는데, 인쇄술이 발달하자 서한신문이나 필사신문 중에서 흥미로운 내용이나 상인·학자·학생·농노·여행자 들에게서 전해오는 이야기를 모아 발행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부정기 인쇄신문을 ‘플루크블라트(Flug-blatt)’라고 부른다. 그후 17세기로 들어서면서 근대신문으로서의 새로운 형태가 갖추어지기 시작하였다.

참고 자료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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