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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에 관한 고찰

저작시기 2009.12 |등록일 2009.12.26 한글파일한글 (hwp) | 15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냉전에 관한 고찰

목차

●냉전
●배경
●제 2차 세계대전과 전후 (1939~1947)
●한국 전쟁 이전의 봉쇄 정책
●위기와 냉전의 강화
●데탕트 시대의 대립 (1962~79)
●제 2의 냉전 (1979~1985)
●냉전의 종식 (1985~1991)
●냉전의 결과
●냉전을 보는 시각

본문내용

●배경
역사가들은 냉전의 시작에 대해 합의를 보지 못했다. 대부분의 역사가는 냉전의 기원을 2차 대전 직후로 보는데, 혹자는 19세기 중엽부터 러시아 제국, 여타 유럽 국가, 미국 사이에 긴장이 있었으나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면서 냉전이 시작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러시아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발을 뺐으며, 소비에트 러시아는 국제 외교에서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은 소비에트 연방이 `적대적인 자본가 무리`에 둘러 싸여 있다고 언급한 바 있으며, 혁명의 국제화를 주장한 코민테른이 성립하면서 그는 외교를 소비에트의 적들을 분열시킬 무기로 보았다.
뒤이어 이오시프 스탈린은 소비에트 연방을 "공산주의의 섬"으로 보았으며, 현재의 소련 주변 자본가 세력들이 공산주의 세력으로 대체되리라고 말했다. 1925년 초 스탈린은 자신이 국제 정치를 양극 세계로 보고 있으며, 여기서 소련은 공산주의로 기우는 나라들을 끌어들이고 있으며 자본주의 나라들은 자본주의로 기우는 나라들을 끌어들여 세계는 몰락을 앞두고 "일시적인 자본주의 안정" 상태에 있다고 말했다. 자본주의에 대한 소련의 도발, 1926년 소련의 영국의 노동자 총파업 자금 지원으로 악화된 영국과 소련의 관계, 스탈린이 "자본주의 국가들은... 과거로 퇴행하고 있다"고 한 1927년 선언, 프랑스와 영국이 쿠데타를 사주하였다며 열린 샤흐티 재판, 2000여 만명 넘는 러시아인이 처형당한 대숙청, 영국, 프랑스, 일본, 독일 스파이 혐의로 열린 모스크바 재판,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1932~1933년의 기근으로 8~9백만 여명이상 죽어 논란이 된 것, 러시아 내전 당시 서방의 백군 지원. 1933년까지 미국이 소비에트 연방을 인정하지 않은 것, 소비에트의 1922년 라팔로 조약. 이런 사건들로 의심은 커졌으며, 서방 세계와 소비에트 연방은 서로 불신하게 되었다. 그 결과 러시아와 미국의 관계는 두 나라 지도자에게 장기적인 주요 문제가 되었다

참고 자료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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