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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에 관한 고찰

저작시기 2009.12 |등록일 2009.12.25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고대 그리스에 관한 고찰

목차

●고대 그리스
●고대 그리스 시대구분
●고대 그리스 세계
●그리스 청동기 시대
●그리스 암흑기
●그리스 고졸기
●그리스 고전기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
●로마제국시대의 그리스

본문내용

4. 폴리스의 성장
스파르타는 정복을 통해 성장하였다. 도리스인이 남하하였을 때, 원주민 가운데 스파르타의 지배를 받아들이고 종속적인 지위를 감수한 자는 운신은 자유롭되 시민권이 없는 페리오이코이가 되고 처음부터 예속신분이었거나 끝끝내 저항한 자는 헤일로타이라는 노예신분이 되었다.
기원전 8세기 중후반 스파르타에서는 전쟁을 일으켜 메세니아를 정복하고 주민을 농노(헤일로타이)로 삼았는데, 이러한 행위는 고대 그리스에서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스파르타의 예속 관습으로 반란의 위험이 생겼다. 스파르타 시민보다 훨씬 수가 많던 `헤일로타이`라는 이들 예속민은 스파르타를 위해 농사를 짓고 일하며 스파르타 시민과 국가가 요구하는 공납을 바쳐야 하였다. 메세니아 전쟁 뒤 스파르타는 예속민의 토지를 시민에게 평등한 수입을 얻을 수 있도록 분배하였다. 그 대신 스파르타의 성인 남성들은 병사가 되어 늘 전쟁에 대비하였다. 상류층도 병사로 훈육받으며 살아야했으므로, 부자와 빈민이 모두 평등하여 시민의 결속을 강화할 수 있었다. 이러한 개혁은 기원전 9세기에 전설상의 뤼쿠르고스(Λυκοῦργος)가 제정하였다고 하나, 사실 메세니아 전쟁에 이르는 역사적 발전의 소산으로, 기원전 650년에 완료된 것으로 보인다.
스파르타의 국제는 두 사람의 왕이 있었으나 실권은 없고 두 왕을 포함하여 30명의 유명 가문 출신으로 구성되는 장로회가 국정의 중요 안건을 마련하지만 이는 20세 이상의 성년남자 시민전체로 구성되는 민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국정운영의 실권은 집정관(Ἔφορος)이 가졌는데, 이들은 또 왕을 포함한 여러 관직자들의 행동을 감시하고 스파르타 특유의 생활양식의 준수 여부를 감시하였다.
이러한 스파르타의 정치구조는 왕정과 귀족정치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성년 남자 전원이 분배지를 가진 동등한 시민으로서 중장보병의 의무를 지고 있었기 때문에 민주정적인 성격도 있다. 완전한 시민권을 가진 시민은 전 주민의 5%~10%에 불과하였다. 그 이유로 언제나 헤일로타이의 반란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러한 상황으로 스파르타는 쇄국주의․군국주의를 채택하였으며, 시민 생활을 전시체제처럼 조직하는 수 밖에 없었다. 스파르타의 시민은 태어났을 때 심사를 거쳐 불구나 허약한 경우에는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버림을 받았다.

참고 자료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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