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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마(로마공화정, 재정로마)에 관한 고찰

저작시기 2009.12 |등록일 2009.12.25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2,000원

목차

●로마
●역사적 배경
●역사
●사회
●정치
●문화
●기술

본문내용

1. 계급
로마 사회는 대단히 위계적이며 계급을 의식하는 사회였다. 최하층은 노예(servi), 그 위로는 피해방인(해방노예, liberti), 그리고 위에는 자유 시민(cives)이 있었다. 자유 시민은 또 일정한 계층으로 분류되었다. 로마 역사 초기 계층은 로마 창건을 이끈 100명의 가부장 출신의 귀족과 나머지 평민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나중에 공화정 시대에 이 구분의 중요성은 떨어지게 되는데, 일부 평민 가문이 부유해져 정계에 진출했으며, 귀족 계급이 몰락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귀족이건 평민이건 누구나 자신의 가족에서 집정관에 오르면 신귀족(nobilis)으로 인정받았다. 가령 가이우스 마리우스나 키케로는 이런 유형의 신인(新人, novus homo)으로 이들의 후손은 귀족이 되었다. 그러나 혈통 귀족인 경우 지속적으로 상당한 명성을 유지했으며, 여러 종교 관직에 임명될 수 있는 자격자는 공화정 말기까지 귀족 출신으로 제한되었다.
계층 구분은 원래 군역 할당에 기반을 두었는데, 감찰관이 정기적으로 재산에 따라 각 시민을 특정 계층으로 분류했다. 가장 부유한 집단은 원로원 계급으로, 정계와 군사를 장악하고 있었다. 다음으로는 기사 계급(equites)으로 원래 이들은 군마(軍馬)를 부담할 수 있는 집단을 일컬었으며, 나중에는 유력한 상인 계급을 형성하게 된다. 하위 계급은 원래 군사 장비 구입 수준에 따라 정해졌으며, 최하로는 군에 입대시킬 아들외에는 재산이 전혀 없는 무산자(proletarii,무산자를 뜻하는 프롤레타리아가 바로 이 말에 뿌리를 두고 있다.)가 있었다. 마리우스의 군제 개혁 이전에 이들은 군대에 들어갈 수 없었으며, 부나 사회의 인식 면에서 피해방인보다 약간 높은 집단으로 정도로 기록되기도 했다.

참고 자료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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