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시대의 변천에 따른 경제학의 흐름

저작시기 2008.11 |등록일 2009.12.23 한글파일한글 (hwp) | 34페이지 | 가격 1,200원

소개글

경제학입문 수업 과제로 제출한 레포트입니다

보기쉽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근대 경제학 이전의 변천

Ⅲ. 근대 경제학의 변천

Ⅳ. 현대 경제학의 변천

Ⅴ. 주류 경제학과 비주류 경제학

Ⅵ.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머리말

경제학이란 어떻게 하면 한정된 재화로 더 많은 효용을 얻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학문이다. 사회과학의 물리학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수학을 많이 사용하며 사회과학 중에 그나마 제일 예측이 잘 맞는 학문이기도 하다.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지만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때문에 이것을 연구하는 경제학은 인류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학문이며 경제학의 역사를 살펴보는 일 또한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학이 지금처럼 경제‘학’으로 정립된 시기는 18세기 중엽이라고 한다. 아담스미스를 경제학의 시조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학문으로 정립하는 시조를 아담스미스로 보는 것이며, 이전에도 물론 인류의 경제활동은 있었고 고대에도 경제활동에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다. 따라서 경제학의 역사를 살펴보는 일은 현대 경제학의 공부에 큰 도움이 될 것이고 지금부터 시대의 변화에 따른 경제학의 변천과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Ⅱ. 근대 경제학 이전의 변천

1. 원시공동체의 경제생활

인간이 정주생활을 시작한 당시의 사회조직을 원시공동체라고 부른다. 다르게는 원시 공산제, 씨족공동체라고 부른다. 이 시대에 인간은 수십 명 단위로 모여 살았다 .하나의 단위는 혈연으로 뭉친 대가족으로서 현재와 같은 일부일처제에 기초한 소가족이 독립하여 생활 할 수 있는 조건은 되지 못하였다. 이 시대에는 넓은 토지를 갖고 있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었고 경작 가능한 토지만이 중요했다. 더군다나 토지는 집단노동으로 경작하고, 부족한 부분을 수렵, 어로, 채집을 보완하되 모두 분담하여 서로 돕지 않으며 살아갈 수가 없었다. 그러한 상태였기 때문에 토지는 대가족이 공유하게 되었고, 사유재산제가 발생할 수 없었다. 누군가가 자기 몫 이상을 취하면 그만큼 다른 사람의 식량을 빼앗은 결과가 되어 식량이 부족한 사람은 죽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생활조건하에서는 이기주의가 싹틀 수 없었다. 지도자로서 추장은 있기는 하나 다른 사람보다 풍족한 생활을 했던 것도 아니다. 남녀차별도 없었다. 다만 일의 성질과 적성에 따라, 조리는 여성이 담당하고, 수렵 어로는 남성이 맡았다. 농사 때는 모든 사람이 각각 분담하여 일했다. 이러한 평등주의는 그것이 혈연가운데서의 평등주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어디까지나 원시공동체의 평등주의는 공동체 내부에서의 평등주의일 뿐이고, 다른 공동체와의 관계에서는 오히려 심한 불평등 관계에 있었다. 각각의 공동체가 정주하고 있는 장소의 조건이 달라서 유리한 쪽과 불리한 쪽이 있었기 때문이다. 토지의 생산성이 높은 곳에 정주한 공동체는 유리했다. 그러나 토지가 척박한 산간부에 자리 잡은 공동체는 불리했다. 그 때문에 끊임없는 싸움이 일어났다. 원시공동체의 시대는 결코 목가적인 시대만은 아니었고, 공동체와의 투쟁이 계속된 시대이기도 했다. 이 시대의 경제는 완전한 자급자족경제였다.

2. 고대 노예제 사회의 경제생활

참고 자료

1. 윤석범.<경제사상의 흐름>.세경사, 1998
2. 김대래.<경제사상사>.신지서원, 2004
3. 김준호.<경제사>.나남, 2003
4. 유시민.<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인물로 보는 경제사상사, 1992
5. 신규성.<세계경제사>.박영사, 1993
6. 주명건.<경제학사>.박영사, 1997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