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6·25전쟁과 한국사회

저작시기 2008.06 |등록일 2009.07.05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5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3년여의 기간에 걸쳐 한반도를 배경으로 남한과 미국 등의 연합군, 그리고 북한과 중국이 충돌한 전쟁이다. 이 전쟁의 성격을 어떻게 규명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의가 있으며, 그 논의는 이 전쟁의 기원을 밝히는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1절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설명하도록 하겠다.)
마찬가지로 그 성격문제를 논할 때 이 전쟁의 명칭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하는 것도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어 있는데, 대표적인 것들로 ‘한국전쟁’이라 불러야 한다는 주장과 ‘6·25’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을 들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편의상 이 전쟁을 ‘한국전쟁’으로 부르도록 하겠으나, 한국전쟁 명칭논쟁과 관련하여 이 호칭을 택한 것은 아니며, 단지 학계에서 일반화된 명칭을 편의적으로 선택한 것에 불과함을 알려 둔다.
한국전쟁은 한국사에서 뿐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중요한 사건이었으며 이후 냉전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그러므로 국내외적으로 이 전쟁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고 다양하게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한국현대사의 문제에 충실하여 국제정치적 문제와 세계사적 문제는 생략하고 한국사에서의 한국전쟁이 차지하는 위상, 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사회의 변화를 중심으로 이 전쟁의 영향을 다루기로 한다.
이 글에서는 한국전쟁이 어떤 기원을 가지고 3년여의 교전기간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전개과정을 거쳐 길고 긴 휴전에 들어가게 되었는지를 간략하게 알아보고, 한국전쟁과 한국사회의 변화가 여러 부분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목차

들어가며

본론 - 한국전쟁과 한국사회
1. 한국전쟁의 기원
2. 한국전쟁의 전개과정
3. 한국전쟁 이후 한국사회의 변화
3-1. 정치적 변화
3-2. 경제적 변화
3-3. 사회적 변화

맺음말

본문내용

한국전쟁 이후의 정치적 변화는 ‘분단질서의 고착’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잘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전쟁은 ‘종전’이 아닌 ‘휴전’으로 마무리된 전쟁이었고, 엄밀히 말하자면 아직도 진행 중인 전쟁이다. 이 부분이 분단질서의 고착에 있어 여러 가지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휴전에 의한 분단이라는 것은 얼핏 상당히 유동적이고 언제든지 재 개전이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조성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항상적이고 고정적인 분단으로 자리 잡았다. 한반도의 휴전체제는 세계냉전체제의 하위질서로서 국제적 보장을 받았다. 이러한 분단질서의 복층구조로 인한 안정적 담보형태는 새로운 전쟁의 재발위험을 크게 약화시켰다. 그러나 분단질서의 고착은 각각의 독자적 발전추구노력과 내부의 정치 갈등, 노선투쟁의 공간을 확장시켰다. 상대방의 침략위협과 불안정성은 전쟁의 위협을 활용하여 내부 갈등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했으나 이것은 단지 정치적인 이용이었고, 남북한 양자는 모두 내부의 정치적 투쟁과 성장에 역량을 집중시켰다.
남한에서는 이러한 분단질서의 고착과 함께 반공 이데올로기의 성장으로 정치적 지배세력의 변화가 함께 일어났다. 해방 후 한국사회에 있어 정치적 지배세력으로 등장할 정당성을 지닌 집단은 해방을 위해 투쟁했던 독립운동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력은 크게 우익세력, 좌익세력, 중도세력으로 볼 수 있는데 이 세 세력 중 어느 세력도 새로운 지배세력으로 등장하지 못했다. 그것은 ‘해방’이 ‘독립’이 아니었던 까닭도 있고, 어떤 이념집단도 일정하게 통일되어있지 않았던 까닭도 있고, 결정적으로 미군정이 이들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미군정에 협조적이었던 이승만과 한민당 계열이 남한에서 새로운 지배세력으로 등장하였고, 이는 반민특위의 실패로 대표되는 친일세력의 온존 및 독립운동세력 특히 사회주의세력의 몰락을 예고하였다. 한국전쟁 이전에는 이범석이 국무총리에 취임하는 등 항일민족세력이 일정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3년간의 전쟁 이후 팽배한 반공 이데올로기는 사회를 지배하여 친일문제보다는 반공문제를 우선시하였고, 이 과정에서 일제 식민지 시기에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세력을 단속한 경험을 가진 친일세력이 반공지사로 둔갑하여 정치적 영향력의 일선에 등장하는 문제를 낳는다. 또한 이들 친일세력 중 상당수는 한국전쟁 기간 동안 군부에 투신하여 자신의 친일경력을 반공투쟁경력으로 미화시키는 동시에 일본군 복무경험 등의 군사적 지식을 활용하여 군의 고위직에 올라 후일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이 확대되고, 박정희 등의 인물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는 기반을 닦았다.

참고 자료

단행본

김학준, 『한국전쟁-원인, 과정, 휴전, 영향』, 서울 : 박영사, 2003
한길사 편, 『한국사 17-분단구조의 정착 Ⅰ』, 서울 : 한길사, 1994

논문·학술지

김동노, 「한국전쟁과 한국사회 한국전쟁과 지배 이데올로기」, 『아시아문화』Vol. 16, 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2000
김영근·박준식, 「한국전쟁과 한국사회 : 한국전쟁과 자본가계급」, 『아시아문화』제16권, 단일호, 2004
김영호, 「한국전쟁 연구의 쟁점과 과제」, 『1999년도 한국정치학회 연례학술회의: 21 세기 한국정치학의 도전과 선택』, 한국정치학회, 1999
김영호, 「한국전쟁 원인의 국제 정치적 재해석-스탈린의 롤백 이론」,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2』, 서울 : 책세상, 2006
김정배, 「스탈린은 왜 한국전쟁을 허락했는가? : 새로운 시각」, 『역사학보』제188집, 2005
김진웅, 「한국전쟁의 원인에 대한 최근의 해석」, 『역사교육논집』제26권, 2001
김학준, 「한국전쟁의 정치외교사적 재조명-한국전쟁의 기원」, 『한국정치외교사논총』 제5권, 단일호, 1989
류상영, 「6·25전쟁과 재벌형성의 역사적 기원」, 『한국과 6·25전쟁』,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2
박명림 , 「누가 한국전쟁을 시작하였는가? ; 남침-북침 논쟁의 종결을 위한 자료와 사실의 검토와 해석」, 『한국정치학회보』제28권, 2호, 1994
신광영, 「한국전쟁과 한국사회 : 한국전쟁과 자본축적」, 『아시아문화』제16권, 단일호, 2004
신복룡, 「한국전쟁의 기원 : 김일성의 개전 의지를 중심으로」, 『한국정치학회보』제30권, 3호, 1996
장세훈, 「전쟁과 도시화 -한국전쟁 전후 서울의 도시화를 중심으로-」, 『도시연구』Vol. 8, 한국도시연구소, 2002
전상인, 「한국전쟁의 사회학: 사회의 변화와 사회적 유산」, 『한국전쟁 50주년 국제학술회의: 한국전쟁과 21 세기 한반도 평화의 모색』, 한국정치학회, 2000
유영익, 「거시적으로 본 1950년대의 역사-남한의 변화를 중심으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2』, 서울 : 책세상, 2006
이정식, 「냉전의 전개 과정과 한반도 분단의 고착화-스탈린의 한반도 정책, 1945」,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2』, 서울 : 책세상, 2006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