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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공내전의 승패요인 분석

저작시기 2008.10 |등록일 2009.07.05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9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1921년 7월에 불과 57명의 당원을 기초로 하여 창당된 중국공산당이 불과 28년 만에 중국 천하를 제패하고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농업국가에서 사회주의국가의 건설을 추진하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만큼 중국공산당의 승리를 예상하기에는 당시 중국국민당 정부가 중국공산당과 비교해 너무 우세했기 때문이다. 양쪽 병력을 예를 들어 살펴보면, 국공내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1946년 7월에 국민당 정부군의 병력은 약 430만 명이었고 공산군의 병력은 약 130만 명이었다. 병력면에서 국민당 정부군은 공산군에 비해 3배가 넘는 우위를 지니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국민당 정부군은 장갑차, 전차, 함정, 비행기 등 현대화된 장비로 중무장하고 있어서, 소총과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있는 중국공산군과는 장비면에서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와 같이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지녔던 국민당 정부군이 공산군에 그처럼 빨리 무너진 이유는 무엇일까? 반대로 이런 압도적인 군사적 열세를 극복하고 공산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 물음에 대한 답으로 국민당의 자멸을 들 수 있다. 국민당이 자멸한데에는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이런 국민당의 자멸요인이 공산당의 승리요인과도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것은 물론이다.

목차

1. 머리말

2. 국민당의 패배요인
(1) 당 내부의 부패와 타락
(2) 사회개혁의지의 결여 및 친일세력 청산에 대한 소극성
(3) 민주화 요구에 대한 탄압 및 경제파탄
(4) 군사 전략·전술의 실패

3. 공산당의 승리요인
(1) 농촌사회의 개혁
(2) 정치적 유연성
(3) 민족적 요구의 수행
(4) 군사 전략·전술의 성공

4. 맺음말

본문내용

(3) 민주화 요구에 대한 탄압 및 경제파탄
국민당 정부는 평화와 민주화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 특히 대도시의 청년학생들과 지식인들의 평화운동, 민주화운동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국민당 정부는 국민당 지역에서 전개되고 있었던 평화와 민주화운동을 소수의 공산주의자들이나 급진적인 지식인들의 선동에서 비롯되었다고 인식하고, 이들은 제거하면 자연스레 평화와 민주화 운동은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서진영, 위의 책, 322쪽

그 결과 국민당 정부는 민주화 운동에 대한 효과적인 탄압을 목적으로 ‘사회질서 유지판법(社會秩序 維持瓣法)’등과 같은 법을 제정하였다. 이 법을 이용하여 그들은 비판적인 정치세력을 합법적으로 억압하였다. 뿐만 아니라 테러와 암살 등과 같은 물리적이고 비합법적인 탄압행위도 자행하여 강압적으로 민주화 요구를 묵살했다. 이러한 파시스트적 행위는 많은 중국인들의 불만을 낳았으며, 이로 인해 지식인들이 국민당에 대한 반감으로 공산당에 입당하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서진영, 앞의 책, 322쪽 참조

또한 국민당 정부는 훈정에 이어 실시된 헌정을 불철저하게 이행하였다. 겉으로 보면 국민당의 염원인 정치적 ‘민주화’를 달성한 것처럼 보였으나, 훈정지배의 정통성을 고집하고 일당독재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여, 다양한 정치적 세력을 포용하는데 실패하였다. 실제로 중국인에게 헌법의 성립과 민선국회의 성립은 어떠한 변화도 가져다주지 못하였다. 일반서민이 접하는 지방의 지도자는 하나도 새로워지지 않았다. 그들에게 헌정의 이행은 국민당의 일당지배체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요코하마 히로아키, 앞의 책, 280쪽 참조


국민당 정부는 중일전쟁과 내전을 치루면서 막대한 비용을 필요로 하였다. 이것은 엄청난 국가 재정예산의 적자를 불러왔고, 국민당 정부는 이러한 정부적자를 화폐발행으로 메우려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중일전쟁 후에 미국제품의 수입초과로 인한 무역적자, 금융정책의 실패는 인플레이션의 속도를 가속화 시켰다.

참고 자료

● 단행본
마크 블레처, 전병곤·정환우 역,『반조류의 중국 : 현대 중국, 그 저항과 모색의 역사』, 돌베게, 2001

小島晋治·丸山松幸, 박원호 역, 『중국근현대사』, 지식산업사, 1998
서진영, 『중국혁명사』, 한울아카데미, 2002
요코하마 히로아키, 박종현 역, 『중화민국사』, 2000
국방군사연구소,『중국인민해방군사』, 국방군사연구소, 1998
두정승, 김택중 외 역, 『중국문화사』, 문화발전소, 2006

● 논문
박선영, 「동북에서의 국공내전(1945 - 1949) - ` 운명적인 선택 ` 동북전취의 경쟁 - 」,《중국사연구》16, 중국사학회, 2001
박치정, 「모택동의 혁명전략과 국공합작」, 《중국연구》20, 건국대학교 중국문제연구소, 2001
장현표, 「중화혁명상황의 변화와 중국공산당토지정책의 변화-국공내전시기를 중심으로」, 《중국학연구》15, 중국학연구회,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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