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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통일과 신라의 재통일

저작시기 2008.11 |등록일 2009.06.30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0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한국사-삼국통일 과정의 그 의의
후삼국의 재통일 고려초기 정세

목차

◉신라의 삼국통일
1.고구려의 멸망
2.백제의 멸망

◉백제와 고구려의 부흥운동
3.나당전쟁과 삼국통일

◉후삼국의 성립
1.구려의 성립과 쇠퇴
2.백제의 성립
3.백제의 멸망

◉고려의 재통일

본문내용

◉신라의 삼국통일
1.고구려의 멸망
고구려는 대외적으로 수나라와의 오랜 전쟁에 시달리고 있었다. 외침을 적극적으로 방어해냈지만 신라의 세력이 강성해지면서 그 압력은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수의 뒤를 이은 당은 처음에는 고구려와의 화친을 꾀하여 서로 사신을 파견하고 포로를 교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 태종이 즉위하면서 세계제국을 건설하려는 야심으로 주위의 여러 나라를 침략하고 고구려에게도 압력을 가하였다. 이에 불안을 느낀 고구려는 국경선에 천리장성을 쌓았는데 이는 북의 부여성(지금 농안 부근)에서 남의 비사성(지금 발해만 부근)에 이르는 방어선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영류왕과 온건파들이 태자를 당에 보내고 당 장수에게 지리를 익히고 군사상황을 살피도록 길을 열어 준 것에 불만을 품고, 연개소문을 중심으로 한 강경파들이 반정을 일으켰다(642년). 연개소문은 왕을 살해하고 실권을 장악한 후에 강력한 대외정책을 펴서 신라와 당에 강경히 대응하였다. 이에 당 태종은 연개소문의 국왕살해를 문책한다는 구실로 고구려를 공격하여 요하를 건너 요동성 등 몇 개 성을 점령하고 이어 안시성을 포위, 공격하였다. 그러나 성주 양만춘과 백성의 용감한 저항과 안시성의 지리적 요건 때문에 60여 일의 집요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끝내 함락시키지 못하고 결국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같이 고구려는 중국의 통일제국 수·당의 거듭된 침입을 막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한편 신라와 당은 백제를 멸망시킨 후(660년) 곧바로 고구려에 대한 공격을 서둘렀지만 연개소문은 강력한 저항으로 나당군의 침입을 막아내었다. 그러나 거듭되는 외란으로 국력이 약화되고 연개소문의 독재정치에 대한 백성의 불평도 높아졌으며, 밖으로는 고구려의 지배하에 있던 거란족과 말갈족이 당에 복속되어 요동방위선이 점차 약화되어가고 있었다. 이때 연개소문이 죽자(666년) 고구려 지배층에서는 내분이 일어나고 나당연합군의 공격은 계속되어 평양성의 고구려군은 분전하였으나 결국 함락되어 멸망하고 말았다(668).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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