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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농민항쟁

저작시기 2008.07 |등록일 2009.06.27 | 최종수정일 2014.03.22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22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조선후기 농민항쟁에 관한 것이며 각주 및 참고문헌, 논문 형식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농민항쟁의 배경
2. 농민항쟁 발발 및 세 집단의 성장과 조직
3. 농민항쟁의 성격과 역사적 의의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이 땅 농민의 역사는 곧 한반도의 역사와 다름없을 것이다.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 현대화된 산업사회에 이르기까지 역사발전의 원동력이자 생산력의 기반, 생산주체는 이 땅의 노동계급, 그 중에서도 농민이었다. 사전적인 의미로 볼 때 농민은 농사짓는 백성, 말 그대로 농사를 생업으로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하지만 이러한 농민의 의미는 역사적으로 시대적으로 조금씩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농사를 짓는 백성이라 할지라도 각 시대에 따라 가지는 역사적 지위나 위치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바로 그 사회의 성격에 맞는 생산관계가 형성되고 그에 따라 농민의 역사적 위치가 결정되는 것이다.
농사를 짓는 백성이라 하더라도 노비는 노비일뿐이다. 그리고 자기의 농지를 짓는다면 그는 농민이 아니다. 그는 단지 지주일 뿐이다. 노예사회에서의 농민이라는 개념은 없다. 봉건사회에서 농민은 하층민이고 농사라는 일을 천한 일이라고 여긴다. 말이 좋아서 ‘農者天下之大本’ 이지만 이는 농민을 심리적으로 위로하고 더욱 더 착취와 수탈을 가중하기 위한 지배이데올로기일 뿐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대농이든 소농이든 소작인이든 모두 농민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땅 수천년의 역사에서 농민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또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풍요로운 환경에서 살아왔다는 기록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생산의 주체로 노동을 하여 이 땅을 지금까지 유지시켜 왔지만 그들에게는 항상 가난과 착취, 불평등 등 수난의 역사뿐이었던 것이 바로 현실이었다.
19세기에 들어와 조선사회는 중세 봉건제의 해체기로 규정할 만한 자체 변동이 명백히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계급적 이해대립 및 착취관계의 극명한 표현인 농민항쟁이 빈번하였다. 특히 19세기 중엽에 집중된 농민항쟁은 해체기에 직면한 봉건사회의 여러 모순을 가장 집약적으로 표출한 것이며, 근대사회로의 이행기에서 아래로부터의 면혁을 담당할 주체세력인 농민이 구체적인 실체로서 결집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 글에서는 주로 19세기 농민들의 투쟁과 현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봉건해체시기라 할 수 있는 19세기에 들어와 발생한 여러 농민항쟁 중 1862년을 전후한 대규모적이고 전국적인 농민들의 항쟁과 1894년 갑오농민전쟁을 전후한 시기의 이땅 농민들의 반봉건투쟁을 살펴보고 이를 현대사적 시각으로 되새기고자 한다.

참고 자료

조상제, 「한국근대농민항쟁사」, 느티나무, 1993.
한상권, 「한국사 시민강좌」“조선후기 세도가문의 축재와 농민항쟁” 제 22집, 일조각, 1998.
조광, 「충청지역의 동학농민항쟁」제 23호. ‘조선후기 민중사상과 동학농민전쟁’, 광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1994.
이윤갑, 「한국사학론집」, “19세기후반 경상도 성주지방의 농민운동”, 지식산업사. 1988.
계명, 「19세기 농민항쟁, 그 역사를 찾아서」, 계명편집국.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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