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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조선의 제도비교

저작시기 2009.05 |등록일 2009.06.22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4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한국사 교양을 듣게 되면서 기말고사 대비를 위한 정리 내용 입니다.

목차

고려의 외교전술
고려와 조선의 제도 비교
고려시대 관료의 세계
고려사회 여성의 지위
조선시대 전반적 개괄

본문내용

고려의 외교전술
고려는 동아시아 세계의 중심 국가인 당나라가 무너지는 대분열의 시대에 건국되었다. 당 멸망 후 동아시아에서 당나라와 같이 강력한 중심국가는 형성되지 않고 고려․송․거란이 각축을 벌이는 다원적인 국제질서가 형성된다. 그리고 주변 국가의 흥망 속에서도 다원적인 국제 질서는 고려 왕조가 지속되는 내내 유지된다. 일찍이 우리 역사를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과 거기에 저항하는 역사로 파악했던 일제 식민사학자들은 대외 관계사를 역사 왜곡의 주요한 소재로 삼아 침략에 더 비중을 두었고, 반면에 국내의 연구는 저항에 더 비중을 두고 역사를 서술하였다. 그러다 보니 대외관계사 연구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침략과 저항이라는 틀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여진정벌이라는 상징적인 사건을 통해서도 고려의 대외관계가 단순한 외국과의 교섭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과 같이 국내 정치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음을 볼 때, 이러한 시각을 넘어서서 대외관계를 좀 더 적극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고려의 대외정책은 오늘의 등거리 실리외교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실리외교의 전형적인 모습은 연운 16주의 패권을 둘러싼 송나라와 거란 간의 분쟁에서 송나라와의 외교를 단절하고 강동6주를 얻는 등의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강동6주는 요새 지역으로, 전략적․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고, 교역의 중심지이기도 하였으므로, 주변 각국과 이를 둘러싼 다툼이 많았다. 또 거란과 금의 갈등을 틈타, 신흥 강국 금나라와의 관계 개선과 함께 영토적인 실리를 획득한 것에서도 고려의 실리외교를 엿볼 수 있다. 고려 전기 등거리 실리외교 정책은 몽골의 등장 이후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쿠빌라이는 고려의 제도와 풍속을 존중하겠다는 ‘불개토풍(不改土風)’의 원칙을 내세운다. 쿠빌라이의 즉위는 몽골과 고려 양쪽의 지배세력이 크게 변동하는 계

참고 자료

유봉학. 한국문화와 역사의식. 신구문화사, 2005
박종기. 새로쓴 5백년 고려사. 푸른역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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