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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핀처(david fincher) 감독 연구

저작시기 2009.06 |등록일 2009.06.21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0페이지 | 가격 1,200원

목차

1. 데이빗 핀처의 생애와 인터뷰
2. 데이빗 핀처의 영화분석
세븐, 더 게임, 파이트 클럽, 패닉룸, 조디악,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본문내용

1. 데이빗 핀처의 생애와 인터뷰
1962년 8월 28일 생으로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출생했다. 조디악이 출몰했던 1960년대 후반에 그는 북부 캘리포니아에서 자랐다. 그리고 그는 8세 생일에 선물로 받은 8mm카메라로 처음 자신의 영화를 만든다. 핀처는 어린시절 로버트 레드포드, 폴 뉴먼이 주연한“내일을 향해 쏴라”를 보고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다. 오레곤 애쉬 랜드에서 애쉬 랜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가 18살이 되던 해 밀 밸리에 위치한 korty영화사에 들어가 자신의 꿈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후 핀처는 스타워즈의 조지 루카스 감독이 설립한 특수효과 전문업체인 ILM에 입사해 1981-1983까지 무대 제작 및 특수 효과에 대한 일을 했다. 1984년미국 암협회의 임신 중 흡연의 위험성에 대한 공익광고를 처음으로 찍어 ILM에 남겼다. 그 후 핀처는 ILM을 떠나 Lee Lacy와 헐리우드로가 TV광고를 찍었다. 나이키, 펩시, 버드와이저, 리바이스, 컨버스 등 수많은 유명회사들의 광고를 찍던 중 그는 자신의 시야를 확장하고 싶어했고 그것은 뮤직비디오 제작으로 이어졌다. 마돈나, 롤링 스톤즈, 스팅, 마이클 무명슨, 조지 마이클 등 유명 가수들의 뮤직 비디오를 제작하여 상당한 명성을 쌓는다. 그러던 중 20세기 폭스사는 에일리언 시리즈 3편인 “에일리언3”(1992)의 제작에 신인감독인 데이빗 핀처를 기용하는 파격적인 일을 한다. 제작사의 요구와 달리 다른 액션영화 들과 달리 그 특유의 어두운 스릴러의 모습으로 영화를 찍자 제작사와 갈등이 생기고 흥행성적도 좋지 않아 그 이후 핀처는 잠시 잊혀지는 듯 했다. 그러나 1986년 프로파간다 영화사 창립맴버인 그는 그 이후 두 번째 영화 “세븐”(1995)을 제작해 그만의 어두운감의 스릴러 영화에 대한 극찬을 받는다.

- “나는 사소한 것을 만드는 것이 영화라고 생각한다. 나는 크고 중요한 영화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카와이 강의 다리에 대해 만들지 않을 것이다. 나는 크고 고귀한 주제를 다루지는 않아요. 나는 누군가가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리메이크 사이코를 원한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내가 틀릴수도 있지만요.”-

위의 인터뷰에서 데이빗 핀처가 말한것은 그는 겉으로 보여지는 뻔한 형식적인 틀의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이야기의 영화를 만들고 싶지는 않다는 말인 것 같다. 그는 좀 더 디테일하고 현재 형식에서 벗어난 그만의 다른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그런 그의 색깔이 확실하게 나타난 “세븐”이 후 그는 “더 게임”(1997)을 통해 자신의 영화색깔을 확실히 굳히고 명성에 대한 입지도 탄탄히 한다. “파이트 클럽”(1999)은 스너프 필름을 소재로한 영화 8MM의 감독을 거절하고 만든 작품이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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