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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공론정치

저작시기 2009.04 |등록일 2009.06.19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1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동서(東西) ‘붕당정치’의 시작과 공론정치의 위기
선조 8년(1575) 이후, 이이는 사림이 오히려 가장 강력한 공론의 적일수도 있다는 새로운 정치 현실에 직면했다. 이 시기에 ‘붕당’과 ‘당쟁’, ‘당론’이 새롭게 등장했다. 정견의 차이와 논쟁은 정치체의 건강성을 드러내는 지표이지만 모든 차이와 논쟁이 그러한 것은 아니다. 조선 정치는 붕당정치에서 그 점을 심각하게 경험했다. 당쟁은 외척 심의겸과 사림 김효원의 불화에서 비롯되어 걷잡을 수 없는 정치적 사태로 발전되었다. ‘을해분당’은 당쟁의 시발로서 조선 후기 정치의 핵심적인 특징이 되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공론의 개념

2. 공론 수용기구의 정비

3. 공론 형성층의 확대

4. 공론정치의 활성화

5. 동서(東西) ‘붕당정치’의 시작과 공론정치의 위기

6. 사림의 공론정치론의 붕괴:
<군자―군자>론에서 <소인―소인>론으로

Ⅲ. 결론

※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설석규, 2002, 「조선시대 유생상소와 공론정치⌟, 도서출판 선인, 9~10p
16세기 후반 이후의 조선시대 정치는 붕당으로 지칭되는 정치세력의 역학관계를 기본구도로 하여 파악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향촌을 배경으로 지역적 유대를 강화하며 성장한 사림세력은 훈척정권을 와해하는데 성공함으로써 공론에 입각한 정국운영이라는 명실상부한 사림정치의 구도를 가능하게 했으나, 그들 내부의 자체분열이 가속화함으로써 정치적인 갈등∘대립을 불가피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후기 정치사 이해에 있어 여전히 아쉬운 점으로 남는 것은 정치세력의 역학 관계에 대한 파악에 비중을 둔 나머지 군주를 정점으로 한 권력구조와 유생을 포함한 사회세력의 동향이 충분한 고려의 대상이 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과, 사림정치나 붕당정치의 존립의 명분으로 인정되는 공론의 운영실상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가 미진하다는 사실이다.
이현출, 『사림정치기의 공론정치 전통과 현대적 함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15p
조선시대의 공론은 ‘사람의 마음이 모두 그렇게 여기는 것’으로 그것은 ‘다수의 의견’이기 때문이 아니라 ‘공정한 의견’이기 때문이다. 즉 공론은 언론이 자연 법적 정당성을 확보한 것을 말하면 ‘리’의 정치사회적 발현을 말한다. 군주제하의 조선조에서는 공론의 발굴과 집행을 위해서 먼저 세습군주를 군주답게 하는데 논의의 초점이 모아졌다. 그것은 주로 강학과 언로를 통해 확보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공론형성층의 수평적∘수직적 확대와 함께 새로운 제도적 모색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붕당을 통한 상호비판과 토론을 통해 공론을 수렴하는 방향으로 메카니즘이 바뀌어 간 것을 볼 수 있다.
공론은 군주정치가 폭군정치로 전락하는 방파제 역할을 하였으며, 정치적 심의 기능을 강화하였다. 아울러 공론은 정치행위 정당화의 근거로 기능하였으며, 때문에 정치세력들은 치열한 공론대결을 벌여온 것을 볼 수 있다.

Ⅱ. 본론

1. 공론의 개념
이현출, 『사림정치기의 공론정치 전통과 현대적 함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17~118p
공의, 공론은 현대적 의미로는 국내에 있어서 다수의 의지, 그 최대공약수적인 국민의 정치적합의를 일컫는다. 그러면 조선조에 있어서 공론과 공론정치는 어떻게 인식되었나? 공론정치는 정치인들이 추구하였던 이상정치에 대한 모형으로 간주된다. 실록을 보면 공론은 일

참고 자료

1) 설석규, 2002, 「조선시대 유생상소와 공론정치⌟, 도서출판 선인
2) 이현출, 『사림정치기의 공론정치 전통과 현대적 함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 국사편찬위원회, 1993, ⌜한국사/국사편찬위원회⌟, 국사편찬위원회
4) 김영수, 『조선 공론정치의 이상과 현실(Ⅰ)』, 국민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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