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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의 역사적 인물과 사건

저작시기 2008.10 |등록일 2009.06.17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2,500원

소개글

역사적 인물인 연산군에 대한 사건을 정리하였습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1. 연산군의 휘(이름)는 융으로 성종의 맏아들로써 조선 제 10대 임금입니다. 재위기간은 12년이고 성종14년에 세자로 책봉됩니다. 성종이 1494년에 갑작스레 승하하면서 즉위하게 되며 1506년에 중종반정에 의해 폐위됩니다. 후 강화도 교동으로 유배를 가게 되고 그 곳에서 31세의 나이로 역질(전염병)에 걸려 숨을 거두게 됩니다.(야사적 입장에서는 살해당했다는 설도 있음)

2. 성종의 죽음 그리고 즉위
아버지인 성종의 가계를 살펴보면 공혜왕후 한씨, 폐비 윤씨를 포함해 12명의 부인을 두었고, 슬하에는 16남 12녀의 자식을 두었습니다. 연산군은 공혜왕후가 후사 없이 죽은 후 새로이 중전이 된 폐비 윤씨의 맏아들로 태어납니다.
-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성종 25년 12월 24일 오시에 38살의 나이로 성종이 승하하게 됩니다. 이에 세자였던 연산군이 19세의 나이로 조선의 제 10대 임금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3. 연산군의 가계
- 연산군의 가계를 살펴보면 폐비 신씨와 한명의 후궁, 2명의 부인을 두었고 슬하에는 4남 2녀의 자식을 두었습니다. 옆에 보시는 가계도를 보시면 알겠지만 폐비 신씨와 2남 1녀를 그리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후궁에게서 2남 1녀를 두었습니다.

4. 실록과 야사에서의 연산군의 성품
《연산군일기》에서는 그는 원래 시기심이 많고 모진 성품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 자질이 총명하지 못한 위인이어서 문리(文理)에 어둡고 사무능력도 없던 사람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리하여 당시의 정계와 연산군과의 사이에는 부지불식간에 갈등이 일어났고, 여기서 그는 문신들의 직간(直諫)을 귀찮게 여긴 끝에 경연과 사간원·홍문관 등을 없애버리고, 정언 등의 언관도 혁파 또는 감원을 하였으며, 기타 온갖 상소와 상언·격고 등 여론과 관련되는 제도들도 모두 중단시켜버렸다. 당시로서는 가장 패륜스러운 일로 생각되던, 이른바 ‘이일역월제(以日易月制)’라는 단상제(短喪制)를 단행한 일도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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