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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관련자료

저작시기 2009.01 |등록일 2009.06.17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4페이지 | 가격 500원

소개글

영조에 관련되 사건과 업적, 인물들을 나열식으로 조사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임인옥사와 연잉군의 자구책
을사처분
정미환국
영조의 쌍거호대
사도세자 사건
영조의 업적
정성왕후 서씨
정순왕후 김씨
효장세자
사도세자
영조가계도

본문내용

임인옥사와 연잉군의 자구책
왕과 백성들의 신임을 얻어 입지를 다진 소론은 대리청정에 앞장섰던 노론 4대신을 탄핵하여 귀양을 보내 는 신축옥사를 일으켰다. 그리고 이 기세를 몰아 이듬해에는 남인 목호룡을 매수하여 노론측 일부 인사가 경종의 시 해를 도모했다는 고변을 하게 해 임인옥사를 일으켰다. 임인옥사를 주도한 소론 대신들은 노론 4대신을 포함한 60여 명을 처형시키고 관련자 170여 명을 유배시키거나 치 죄하여 축출시켰다. 이 때 임인옥사의 사건 보고서에 왕세제도 모역에 가담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었다. 전례로 봐서 모역에 가담한 왕자가 살아남은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연잉군 외에는 왕통을 이을 왕자가 전혀 없었 기 때문에 그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 때문에 연잉군은 갖가지 고초를 겪게 된다. 자신이 수족 처럼 부리던 장세상이 소론측 사주를 받은 내관 박상검, 문유도 등의 모함으로 쫓겨나고 소론측 대신들에 의해 경종 을 문안하러 가는 것도 금지당했다. 연잉군은 자신의 지지 기반이던 노론이 신임사화로 대거 축출되고 거기다 신변의 위협마저 느끼게 되자 대비 인원 왕후 김씨를 찾아가 왕세제 자리를 내놓는 것도 불사하겠다며 자신의 결백을 호소했다. 김대비는 평소 노론측 입장에 서서 왕세제를 감싸왔던 터여서 왕세제의 간절한 호소를 담은 언교를 몇 차례 내려 소론측의 전횡을 누그러뜨렸다. 그 덕택으로 연잉군은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을사처분
영조는 소론의 영수 김일경, 남인의 목호룡 등 신임옥사를 일으킨 대신들을 숙청한 다음 1725년에는 김일경이 노론 4대신을 역적으로 몰아 상소할 때 이에 동조한 이진유 등 6명을 귀양보냈다. 그리고 노론측의 소론에 대한 잇따른 논핵에 의거해 영의정 이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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