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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와 조선도자기문화

저작시기 2009.06 |등록일 2009.06.10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4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규슈에 남은 한반도 도자기문화의 흔적에관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1.들어가며
2.본론
2-1. 사쓰마번(薩(덧말:さつ)摩(덧말:ま)蕃(덧말:ばん))과 심당길(沈當吉)
2-2. 심수관(沈壽官)의 일대기
2-3. 심수관도요지에 대해
3.나오며
참고문헌

본문내용

1. 들어가며

예로부터 섬나라였던 일본은 한반도를 통해 대륙의 문화를 전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 일본의 도자기 문화는 상당부문 한반도의 영향이 짙었음은 공공연한 이야기 이다. 정유재란(1597) 임진왜란의 제2차 전쟁
때 일본 규슈(九州)로 잡혀간 심당길(沈當吉)은 거기에 정착하며, 조선의 도자기기술을 일본에 전파했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 부른다. 심당길(沈當吉)과 심수관(沈壽官)을 중심으로 규슈에 남아있는 한반도 도자기 문화를 살펴보자.

2. 본론
2-1. 사쓰마번(薩(덧말:さつ)摩(덧말:ま)蕃(덧말:ばん)) 규슈 남부지역을 지배한 77만석(石)의 도자마다이묘(外樣大名). 16세기말 규슈를 거의 통일 하여 세력을 떨쳤다.
과 심당길(沈當吉)

사쓰마(薩摩)는 지금 규슈 가고시마(鹿兒島)현 일대의 옛 이름이다. 옛 규슈는 9개의 번(蕃(덧말:ばん))으로 나뉘어 있었고 사쓰마는 그중의 하나였다. 이 사쓰마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것들 중 일본에서 유명한 것이 두 개가 있다. 바로 고구마를 뜻하는 사쓰마이모(さつまいも)와 조선식으로 구워낸 도자기인 사쓰마야키(薩(덧말:さつ)摩(덧말:ま)焼(덧말:やき))다. 이름에 지명이 붙었을 정도이면 사쓰마야키는 적어도 사쓰마번에서 만큼은 당대 최고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쓰마야키의 초대 전수자가 바로 전쟁의 포로로 끌려온 조선인 심당길이었다,
심당길은 정유재란때 남원성싸움에서 적장 시마즈요시히로(島津義弘) 일본의 에도 시대에 활동한 무장. 임진왜란 때 1만 50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참전했고, 일본으로 귀환하면서 전라북도 남원성에서 80여 명의 조선 도공들을 납치했다.
에게 붙들렸다가 이듬해 12월 17성(姓:申 ·李 ·朴 ·卞 ·林 ·鄭 ·白 ·車 ·姜 ·陳 ·崔 ·盧 ·金 ·丁 ·何 ·朱 ·沈)과 함께 규슈[九州] 사쓰마번에 상륙하였다. 1599년 조선식 가마를 만들어 도기를 생산하였으나 현지 주민과 언어가 통하지 않아 자주 마찰이 생겼다. 1603년 17성과 같이 나에시로가와[苗代川] 가고시마 현 히오키시의 옛 이름.
(日置郡 東來町 美山)로 옮겨 이듬해부터 조선식 가마를 만들어 구로몬(黒物) 규슈의 화산재의 검은 흙으로 만든 검은 도기. 주로 서민들이 사용했다, 귀족들은 백자를 애용했다.
이라는 조선의 분황사기 비슷한 것을 만들었다. 일본의 기록에는 그 때의 정황을 `촌민들의

참고 자료

인터넷자료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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