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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점 무명문화의 전래자

저작시기 2005.06 |등록일 2009.06.08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9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단순히 붓뚜껑에 목화씨를 들여온 인물이라고 잘 알려진 문익점에 대해 그의 역할이 가져다 준 사회적 의미에서 당시 사회적 배경 및 그의 출생에서 성장 업적까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교양과목에서 고려사에서 가장 의미있다고 생각되어지는 인물에 대해 조사하여 발표하는 과제물이었고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총 9페이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목차

1. 서론

2. 본론

(1) 문익점의 생애와 그의 시대

1) 출생과 가문
2) 그가 받은 교육
3) 행적과 업적
4) 죽음과 후세의 평가

(2) 문익점의 덕성과 전승양상

1) 문익점의 덕성
2) 전승 양상에 나타난 진실과 허구

3.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고려사에서 가장 위대하고 대단한 업적을 남긴 인물 중 한 명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 문익점의 목화씨 전래를 들고싶다. 흔히 우리는 목화씨를 붓통에 몰래 가져온 전래자라는 면모에 맞춰진 초점으로 그를 바라본다. 그러나, 우연히 문익점이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었다는 내용을 접하고 관심을 갖지 않았던 그의 인간성과 행적에 대해서도 알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여 그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목화씨의 전래에 대해 정확한 사실상의 기록이 궁금해 살펴보고자 한다.

문익점(文益漸: 1331~1398)은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가져와 소위 의류 혁명을 일으킨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널리 알려진 공적 한 가지만으로 한 사람에 대해 파악하기란 힘들다. 예를 들어, 그는 공민왕이 배원정책을 펴던 무렵에 난을 일으킨 덕흥군에게 높은 벼슬을 받은 혐의로 십여 년 간이나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에 머물렀다. 또 그는 이색․정몽주 등과 함께 조선의 창업에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개국 과정에서 죽임을 당한 정몽주와 개국 후에 죄를 받은 이색과 달리 조선 왕조로부터 오래도록 우대를 받았다. 그러나 이렇게 그의 인생에 드리워진 어둡거나 혹은 밝은 인간적인 내용들은 잘 알려져 있지 않고, 대중들은 그를 강남에서 목화씨를 붓 뚜껑에 숨겨 들여 온 사람으로만 알고 있다.

2. 본론

(1) 문익점의 생애와 그의 시대

1) 출생과 가문

문익점은 충혜왕 원년(1331)에 그의 고조부에게 봉해진 강성, 지금의 경남 산청군1) 단성면에서 아버지 숙선(叔宣)과 어머니 함안 조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고려사』「열전」「문익점전」첫머리에서는 “문익점은 진주 강성현 사람으로서 공민왕 조에 과거에 올랐다.”라고 문익점의 출생지만 밝혀져 있을 뿐, 그의 가계․가문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또『태조실록(太祖實錄)』「졸거기사(卒去記事)」를 보면, “익점은 진주 강성 사람으로서, 아버지 숙선이 등제했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고 해서 그의 가계․가문을 밝히지 않았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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