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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적 사고를 통해 바라본 세계 2차 대전

저작시기 2008.12 |등록일 2009.06.06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9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지리적 사고를 통해 바라본 세계 2차 대전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공황과 국제적 긴장
2. 폴란드 침공
3. 러시아-핀란드 전쟁
4. 유럽 서부 전선
5. 영국과의 공중전
6. 독일의 발칸 반도 정복
7. 소련 침공
8. 스탈린그라드 전투
9. 이탈리아 침공
10. 노르망디 상륙작전

Ⅲ. 결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8. 스탈린그라드 전투
1942년 여름 독일군은 소련에 대한 공격을 재개하여 남러시아 유전지대를 점령하려고 하였다. 1941년 6월 이래 독일군은 레닌그라드를 포위하고 모스크바를 공격했으며, 1942년 여름 러시아 남부에 깊숙이 침투하고 세바스토폴을 점령했음에도 소련의 항복을 받아내지는 못하였다.
동부전선의 기로가 된 중요한 전투가 스탈린그라드(지금의 Volgograd)에서 있었다. 그곳은 볼가 강으로 나가는 수송 요충지이며 남러시아 유전지대에의 통로였다. 1942년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소련군의 적극적 방어로 수개월간 계속되었다. 9월이 되자 독일군은 스탈린그라드 시에 침투하여 시가전을 벌였다. 다가온 겨울철 때문에 독일군이 침체해진 사이에 소련군은 맹렬한 반격을 개시하였다. 히틀러는 스탈린그라드의 사수를 강경하게 명령했으나 독일군은 상당수 이탈하였다. 1943년 2월 항복했을 때 독일군 30만 가운데 3분의 1 가량이 이탈해버린 상태였다. 독일은 이제 자국 국경을 지키는 데 급급한 상황으로 전세가 뒤집어졌다.

9. 이탈리아 침공
카사블랑카 회담에서 처칠과 루즈벨트는 유럽 공략과 관련해 시칠리아 상륙작전에 합의하였다. 1943년 7월 연합군은 시칠리아에 상륙하였다. 연합군의 침공이 임박해짐에 따라 무솔리니는 사임을 요구받고 체포되고 바돌리오 장군이 수상으로 임명되었다.
연합국이 시칠리아를 점령하는 데 성공하고 무솔리니가 몰락하자, 미국의 군부 및 정치 지도자들은 이탈리아 전투를 지지하게 되었다. 시칠리아를 확보한 연합군은 다음에 공격할 방향을 고르기 시작했지만, 선택의 폭이 너무 넓었다. 이탈리아의 `발가락`인 칼라브리아는 시칠리아에서 가장 가깝고 가장 명백한 목적지였다.
`정강이`도 취약지점이었고, `뒤꿈치`도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몽고메리가 지휘하는 2개 군단은 메시나 해협을 건너 1943년 9월 3일에 이탈리아의 `발가락`에 상륙했다. 초기의 저항은 사실상 무시해도 좋을 정도였지만, 험준한 지형이 대군의 병력 배치를 방해했기 때문에 연합군은 천천히 진격했다. 연합군이 `발가락`에 상륙한 날, 이탈리아 정부는 연합국이 항복 조건으로 제시한 비밀조항에 동의했다.

참고 자료

존 키건, “2차세계대전사”, 청어람미디어, 2007
차하순, “새로 쓴 서양사 총론2”, 탐구당, 2003
한국 브리태니커 (http://premium.britannic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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