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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원 조사

저작시기 2009.03 |등록일 2009.06.06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0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소쇄원에 대한 조사

목차

<소쇄원이란>
<소쇄원의 건축>

본문내용

<소쇄원이란>

“소쇄원”은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 123번지에 소재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원림이다.

1981년 국가 사적 304호로 지정된 한국민간 정원의 원형을 간직한 곳으로 자연에 대한 인간의 경외와 순응. 도가적 삶을 산 조선시대 선비드르의 만남과 교류의 장으로서 경관의 아름다움이 가장 탁월하게 드러난 문화유산의 보배이다. 전체적인 면적은 1400여평의 공간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 조성된 건축물, 조경물은 상징적 체계에서뿐만 아니라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절묘하게 이뤄내며, 그 안에 조선시대 선비들의 심상이 오롯이 묻어나 있는 공간이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봉대’와 ‘광풍각’ 그리고 ‘제월당’이 있으며, 긴 담장이 동쪽에 걸쳐 있고, 북쪽의 산사면에서 흘러내린 물이 담장 밑을 통과하여 소쇄원의 중심을 관통한다.
“소쇄원”의 주요한 조경수목은 대나무와 매화, 동백, 오동, 배롱, 산사나무, 측백, 치자, 살구, 산수유, 황매화 등이 있으며, 초본류는 석창포와 창포, 맥문동, 꽃무릇, 국화 등이 있다. 조경물로는 너럭바위, 우물, 탑암과 두 개의 연못이 있으며, 계곡을 이용한 석축과 담장이 조화로운 곳이다. 이러한 공간의 조성은 조선중종때의 선비인 소쇄공 양산보의 주도로 이루어졌으며, 그 정확한 조영시기는 1520년대 후반과 1530년대 중반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후 정유재란으로 건물이 불에 타기도 했지만 다시 복원 중수하고 현재까지 15대에 걸쳐 후손들이 잘 가꾸어 나가고 있는 조선 최고의 민간정원이라 할 수 있다.
양산보는 15살에 정암 조광조의 문하에서 수학하는데 스승이 바른 정치를 구현하다 기묘사화(1519년)에 연루되어 화순 능주에서 귀양을 살다 사약을 받고 죽게되자 17살에 고향으로 돌아와 평생 세상에 나가지 않고 은둔, 처사의 길을 걸었고, 이는 선비가 불행하게도 때를 만나지 못하면 도를 마음에 담아둘 뿐 펼치지 못하며 교화는 자신의 집안으로만 그치고 넓혀지지 못한다는 옛적의 말을 볼 때 그로 인해 양산보는 선비의 큰 뜻을 펴지 못하였으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학문에 힘쓰며,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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