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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돈이란무엇인가? 신돈에대하여

저작시기 2009.03 |등록일 2009.06.03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신돈에 관한 레포트입니다.
신돈에대하여 이해를 할수있습니다.

목차

그럼 신돈은 누구인가
신돈의 집권과 개혁
기득권 세력의 반발에 무너진 개혁의 꿈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 것인가

본문내용

신돈은 오늘날 경상남도 창녕 지역에 해당하는 영산(靈山) 출신이었다. 그의 본래 이름은 편조(遍照)였으며, 자(字)는 요공(耀空)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영산의 유력자였을 가능성도 있다. 고려에서는 인종 13년(1135)에 노비로 승려가 되지 못하게 하는 법령을 만들었다. 그런데 신돈의 어머니는 계성현(桂城縣)에 소재한 옥천사(玉川寺)의 노비였다.따라서 신돈이 승려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신분에 의존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신씨(辛氏)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영산 지역의 토성(土姓)이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영산 지역에 분묘를 두었던 신돈의 아버지는 이곳의 유력자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영산 지역의 유력자로 추측되는아버지와 계성현 옥천사의 노비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신돈은 어려서부터 승려가 되었다. 그가 승려로서 일찍이 인연을 맺은 사찰은 그 어머니가 종노릇을 한 계성현의 옥천사였을 것으로 보인다. 창녕 화왕산 남쪽에 있었던 이 사찰은 신돈이 죽임을 당한 뒤 곧 폐쇄되었다. 그 뒤 다시 고쳐지어졌지만, 완성되기 직전에 다시 헐리고 말았다. 신돈의 일로 해서 다시 반대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옥천사를 단순히 신돈의 어머니가 종노릇 한 곳으로만 볼 수는 없다. 옥천사가 그만큼 신돈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는 뜻이다.

일찍부터 옥천사와 인연을 맺은 신돈이 어느 계통의 승려였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다. 그런데 옥천사는 신라 화엄종의 개조(開祖)였던 의상(義湘: 625~702)의 화엄전교(華嚴傳敎) 10찰 가운데 하나였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신돈은 화엄종 계열의 승려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의 본래 이름이 편조였다는 점도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즉, 편조는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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