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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사 관련 유적지 조사 - 덕수궁, 정동교회, 구러시아공사관

저작시기 2008.06 |등록일 2009.05.31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9페이지 | 가격 700원

소개글

한국 근현대사 관련 유적지조사 과제를 위해
덕수궁, 정동교회, 구러시아 공사관을 다녀와서 쓴 것으로
사진및 느낀점이 포함되어있고 좋은 점수를 거든 레포트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오랜만에 답사 길을 나섰다. 볕이 따스했던 5월의 봄날. 우리의 답사는 정동교회부터 시작된다. 사실 덕수궁을 먼저 들렸으나 월요일이 휴관이라는 사실을 깜빡하고 갔기 때문에 덕수궁은 며칠 뒤 다시 찾아보았다.
덕수궁, 정동교회, 구러시아공사관은 중학교 때 답사를 가보고 꽤 오랫동안 내 기억에서 잊혀 져 있던 곳이었다.

먼저사적 제 256호 서울시 중구 소공동에 위치하고 있는 정동교회(貞洞敎會)는 고종 광무 2년 (1898)에 준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 신교(新敎) 교회 건물이다. 당초는 건평이 115평이었으나 1926년 증축 때 양쪽 날개 부를 넓혀서 현재는 175평이다. 원 건물은 그대로 두고 양 날개부만 증축했기 때문에 건물의 원형에는 손상이 없다. 구조는 단층건물로서(층탑은 3층) 삼랑식(三廊式)의 단순화된 고딕식 양식을 취하고 있으며, 북미 계통의 단순화된 교회건물의 맛을 엿볼 수 있다.

정동교회는 덕수궁 돌담길을 걷다 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정동교회는 한국 개신교회의 최초 교회며 한국 신문화의 요람지며, 3·1운동의 한 발원지였다. 정동교회는 1백 14년 전 아펜젤러 선교사가 처음 교회를 세운 이후 한국기독교의 역사를 몸으로 증거하면서 한국 근대화의 진원지가 됐다. 1885년 4월 5일 아펜젤러 선교사는 스크랜턴·스크랜턴 대부인과 함께 제물포항으로 입국, 서울에 들어와 한국 최초의 개신교회를 세웠다. 정동교회는 처음부터 배재·이화학당과 한몸을 이뤄 출발, 서재필· 윤치호· 이승만· 김규식· 신흥우· 조병옥· 유관순· 김활란 등 수 많은 민족 지도자들이 이 교회를 통해 조국의 새로운 미래에 대한 꿈을 키우도록 도왔다. 정동교회는 암울했던 일제치하에서 민족 자주독립의 믿음을 전하던 독립운동의 거점이었다. 3·1운동이 일어나기 5일 전인 2월26일 민족대표 33인 중 기독교측 인사 10명이 정동교회 이필주 목사의 사무실에 모여 기독교측 민족대표 명단을 확정했다. 감리교의 박희도· 박동완· 최성모· 오화영· 김창준· 신석구· 이필주 그리고 장로교측의 이승훈· 이갑성· 함태영 등이 선정됐다. 이필주 목사, 박동완 전도사 등 정동교회 목회자들도 33인의 반열에 들었다. 3·1운동에 전적으로 동참했던 정동교회는 일본 정부의 탄압을 받아 큰 손상을 입었으나 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민족의 새로운 등불이 되기 위해 사회활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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