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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사 -신탁통치 관련 정치세력의 입장화 활동, 해방후 정당과 정치노선, 6.25 발생 원인 결과

저작시기 2008.10 |등록일 2009.04.20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1,800원

소개글

한국현대사 중간고사 논술형 대비 모범답안
A+을 보증합니다- ㅋ

목차

1. 해방 후 신탁통치를 둘러싼 정치세력의 입장과 활동에 대하여 논하라.
2. 해방 후 주요 정당과 그 정치노선에 대해 논하라.
3. 6.25 전쟁의 발생 원인과 결과와 영향에 대해 논하라.

본문내용

1. 해방 후 신탁통치를 둘러싼 정치세력의 입장과 활동에 대하여 논하라.

1945년 8월 15일 해방 후, 한반도문제가 최초로 12월 16일 모스크바에서 논의되었다. 바로 영국 미국 소련이 참여한 모스크바 3상회의였다. 12월 16일에서 27일까지 열렸는데 주요 의제는 한반도 임시정부의 수립, 그리고 임정 수립을 돕기 위한 5년간의 신탁통치, 이러한 문제들을 협의하기 위한 미소공동위원회의 설치가 주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의 핵심은 임시정부의 수립이었다. 하지만 모스크바 3상회의가 끝나기도 전에 동아일보에 소개된 기사에서는 그 본질을 왜곡하여 전달하였다. 임시정부의 수립이 아닌 ‘한국을 4개국(미 영 소 중)의 신탁통치 안에 둔다.’를 부각시켰으며, 본래 소련이 반탁이며 미국이 찬탁인데 ‘소련은 찬탁이고, 미국은 반탁’이라고 소개하였다. 이러한 왜곡보도는 국내에서 신탁통치 논쟁을 격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내용이 알려지자 처음에는 좌우익 모두 반탁을 주장했으나, 곧 분열되었으며, 각각의 정치세력의 목적도 각자 달랐다. 김구와 임정, 한민당은 반탁에는 입장을 같이 했으나 반탁운동의 목적은 서로 달랐다. 김구 측은 반탁의 초기 국면을 주도하면서 중경 임정 추대에 열중했고, 이승만과 한민당 측은 반탁운동을 이용하여 단독정부 수립에 치중했다.

그 중 가장 먼저 활동을 시작한 인물은 김구로 그는 신탁통치 반대 국민총동원위원회를 조직하여 반탁투쟁을 주도하였다. 신탁통치를 배격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군정청 직원의 총 사직과 파업을 독려하여 일정부분 성과를 거두었다. 또 임정 절대 수호, 외국군정의 철폐 등 행동강령을 발표하였다. 그 후 임정을 확대 강화하여 과도정권을 수립한다는 당면비상대책도 발표하였다. 46년 1월 12일 신탁통치 반대 국민총동원위원회가 주최하는 시위가 전개 되었다. 김구는 이를 기회로 임정 봉대를 기정사실화하고 정권을 잡으려 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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