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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시기 2009.04 |등록일 2009.04.18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5페이지 | 가격 2,500원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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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산가요록의 찬자 전순의의 생애
1. 전순의(全楯義)의 생몰 연대 고찰
2. 저서(著書)를 통해서 본 전순의(全楯義)

Ⅱ. 산가요록 발굴의 의의

Ⅲ. 산가요록의 주요 내용
1. 농업
2. 조리
1) 술(釀造)
2) 장(沈醬)
3) 김치(沈菜)
4) 식해(食醢)

Ⅳ. 산가요록에 나타난 온돌과 시설농업
1. 온돌 보급과 농업
2. 조선전기 온돌보급의 실태
3. 조선전기의 시비법과 온돌
4. 온돌의 또 다른 활용법

Ⅴ. 산가요록에 나타난 동절양채 농법
1. 동절양채의 기술체계
2. 동절양채 그 시기와 향유자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산가요록의 찬자 전순의의 생애
1. 전순의(全楯義)의 생몰 연대 고찰
전순의(全楯義)의 생몰연대는 정확하게 기록된 것이 없으나 1459년 세조5년에 세조임금이 고향에 은둔(隱遁)하고있던 유의(儒醫) 임원준(任元濬)을 특별히 불러 전순의가 늙고 병들어 의생(醫生)을 가르칠 사람이 없고 또한 의술(醫術)에 정통한 사람이 전연 없어 그대를 불러 벼슬을 내린다고 말한것과, 세조12년 1466년에 특별히 임금이 시임대신(時任大臣) 한계희(韓繼禧), 노사신(盧思愼)과 전순의(全楯義) 등을 궁중에 불러 대렵도(大獵圖)라는 놀이를 하게하고 이를 구경하였다 하였는데 몇해 되지 않은, 1469년 세조 임금의 임종시 그 치료에 당대 가장 명의로써 치료에 참여하지 않았음을 보면 이때 이미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1469년 당시가 50대의 후반으로 보아 1400년대 초로 출생년도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옛날에 평균수명이 짧아 회갑인 만60세까지 사는 것을 크게 경축하고 기뻐한 풍속이 있어 50대 후반이면 많이 늙은 축에 속하였던 인식이 있었을 것이고 특별히 세조의 사랑을 받던 내의가 임금의 임종에 참여하지 않았었다. 성종 이후엔 그에 대한 활동기록이 전연 없던 점으로 보아 사망연대는 1467년 - 1468년으로 추정하여도 될 것 같다.
그의 출신 성분으로는 보통 의관이나 역관 등 전문하급 관리들은 중인들이 차지한데 비하여 전순의(全楯義)의 출생신분을 노비나 백정 등 대단히 미천한 출생 신분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단종 3년 대사헌(大司憲) 권준(權俊) 등이 전순의(全楯義)의 죄를 상소하면서 말하기를 전순의(全楯義)는 그 계통이 심히 미천한데 세종대왕 같으신 밝은 임금을 만나 초법적으로 발탁되어 지위가 3품에 이르렀고 그 상급과 은총을 누린 것이 셀 수가 없다고 운운한 것을 보면 그의 출신성분이 보통의 중인계급이나 상민계급이 아니어서 초법적으로 발탁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러 가지 기록을 참고한다면 세종임금의 발탁을 받기까지는 그의 머리가 비상한 천재성이 없지 않고서는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 자료

김영진 외, 조선시대농업게술사, 서울대학교 출판부
민성기, 농가월령과 16세기의 농법, 부대사학 6, 1982
이호철, 조선전기 농업지대의 분석, 경북대농학지 4, 1986
이호철, 조선전기농업경제사, 한국사회연구총서3, 한길사, 1985
이성우, 한국식경 대전, 향문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정신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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