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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신진사대부의 등장과 조선건국

저작시기 2008.04 | 등록일 2009.04.17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28페이지 | 가격 700원

목차

1. 반원개혁과 신진사대부의 성장
1. 반원개혁과 정치세력의 재편
1. 태고보우스님과 조계선풍
2. 신돈의 개혁과 신진사대부의 대두
1. 체원스님과 익재 이제현
2. 신돈과 화엄세계
3. 신진사대부의 성장과 조선건국
1. 여말선초의 삼화상(三和尙), 無學大師
2. 태조의 왕사(王師)이자 나옹의 적통(嫡統)
3. 영아행(嬰兒行)으로 우뚝 솟은 삼화상(三和尙)
4. 나옹혜근스님과 여말선초 삼화상

본문내용

1. 반원개혁과 정치세력의 재편

고려와 원나라의 강화 이후 약 80년 동안 지속되었던 두 나라 사이의 관계는 14세기 후반에 이르러 중대한 변화를 맞이하였다. 이 무렵 중국에서는 몽고족의 통치력이 약화되면서 한족(漢族)들이 각지에서 봉기하였고, 이와 때맞추어 고려에서는 1356년(공민왕 5)에 反元改革이 성공함으로써 원의 간섭을 종식시켰다.
이러한 사태의 진전은 곧 측근정치의 구조를 극복하는 계기가 되었다. 측근정치는 원나라의 간섭이 강력하게 작용하는 가운데 성립된 정치형태로서, 이제 원의 간섭에서 벗어난 상황에서는 더이상 계속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반원개혁이 성공한 뒤에는 공민왕의 측근세력이 정치세력으로서의 성격을 상실하면서 점차 와해되어갔고, 이후 고려의 정치는 기존의 권문세족과 이 시기에 새로이 성장한 신진사대부(新進士大夫)가 서로 대립하는 가운데 전개되었다.
앞서 整治都監의 활동은 비록 실패하였지만, 권문세족과 부원세력간의 정치적 대립이 표면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대립은 충목왕이 죽자 왕위계승 문제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노출되었는데, 결국 부원세력이 추대한 충정왕이 즉위함으로써 권문세족은 정치도감의 실패에 이어 또 한번의 좌절을 겪어야 했고, 이후 부원세력의 영향력은 더욱 강화되었다.
그런데 충목왕 때의 일차적인 배제대상이었던 충혜왕 측근세력이 이 과정에서 부원세력과 협력하였고, 여기에 충정왕의 외척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국왕 측근세력이 형성되어 서로 대립함으로써 충정왕대의 정치는 혼란을 거듭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나라는 이전에 권문세족이 지지했던 공민왕을 고려국왕에 봉하였고, 이에 따라 원에서 숙위하고 있던 공민왕이 충정왕의 양위를 받아 즉위하였다.

충목왕이 즉위하여 공민왕을 강릉부원대군으로 봉하였다. 층목왕이 돌아가시니 고려에서 왕을 세우고자 하였으나, 원에서 충정으로 왕을 계승케하고 인하여 (공민)왕을 머믈러 숙위(궁궐에 머물러 지키는 것)케 하였다. 처음에 충숙왕이 공민왕을 윤택에게 부탁한 일이 있었으므로 충정 원년에 윤택이 이승로와 더불어 글을 (원의) 중서성에 올려 왕을 세우기를 청하였다. 이 해에 왕이 노국공주에게 장가들었는데 , 3년 10월에 원에서 국왕을 삼았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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