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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의 원도<韓愈의 原道>

저작시기 2009.04 |등록일 2009.04.16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3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안녕하세요 교육대학원 중국어교육생이구요, 수업시간에 발표한 한유의 원도를 올립니다.
많은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자료는 알차면서 보기쉽게 정리했으니 도움이 될거예요^^

목차

1. 韓愈
1) 生涯
2) 주요작품 및 그의 사상
3) 문학상의 공적

2. 古文運動
1) 시대적 배경
2) 한유의 고문운동
3) 고문의 성격
4) 한유의 佛敎 · 道敎 비판

3. 作品 <原道 >

본문내용

1. 韓愈
1) 生涯
한유(韓愈, 768-824)의 자는 퇴지(退之)요, 시호(諡號)는 문공(文公)이다. 본적지는 하북성(河北省) 창려(昌黎)인데 송대(宋代)에 창려백(昌黎伯)이라는 작위를 추증(追贈)받았으므로 한창려(韓昌黎)라고도 부르며, 출생지는 懷州 修武縣, 지금의 하남성 남양(南陽)이다.
3세 때 고아가 되어 주로 형수 鄭부인 손에 자라났다. 어려서부터 어려운 속에서도 각고면려하여, 貞元2년(786) 장안으로 가서, 정원 8년(792)에 진사가 되었다. 그는 공명에 뜻을 두고, 재상과 고관들에게 글을 올렸으나 몇 사람에게만 인정받았을 뿐 뜻을 이루지 못하자 장안을 떠나 洛陽으로 왔다. 뒤에 寧武節度使 張建封 밑에 보좌관 노릇을 하다가, 정원 17년(801)에는 國子博士를 거쳐 監察御使가 되었고, 다음해 시정을 논하다가 陽山令으로 귀양을 갔다. 憲宗이 즉위(806)한 뒤 國子博士를 거쳐 都官員外郞이 되었다. 뒤에 裵度가 淮西 지방의 반란을 평정할 때, 한유는 行軍司馬로 일하였고, 난이 평정되자 공로로 刑部侍郞이 되었다.
원화14년(819)에는 헌종이 사신을 보내어 鳳翔 法文寺로부터 부처의 뼈를 궁중으로 맞아들이자 유명한 「諫迎佛骨表」를 올려 불교를 배척하였다. 이것이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潮州刺史로 귀양갔다. 穆宗이 즉위하자 國子祭酒를 거쳐 京兆尹⦁吏部侍郞을 지냈다.

2) 주요작품 및 그의 사상
한유의 산문은 형식과 내용면에서 새로운 경지를 창조하여 후인들의 학습 모범이 됨과 동시에 타의 추종을 불허함으로써 일찍이 `韓文`으로 칭해졌다. 그리고 蘇軾에 의해 `杜詩韓文`으로 병칭되면서 각기 전대의 詩와 文의 모든 성취를 집대성한 것으로 높이 추앙되기도 했다.
한유는 유교 윤리를 바탕으로 하여, 형식만을 중시하는 변려문을 반대하고 고문을 쓸 것을 주장하였다. 그의 고문은 단순히 한 대 이전의 옛 글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유가적인 도가 담겨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하였다.

참고 자료

⦁唐宋八大家의 산문세계/오수형 편역/서울대학교 출판부/2000
⦁中國歷代 名文賞讀/王峰/延邊人民出版社/1997
⦁古文觀止/吳雲주편/長春出版社/2004
⦁唐宋八大家 散文精品/吳雲주편/長春出版社/2006
⦁중국고전산문바로읽기/한국중국산문학회 편저/중국어문화원/2000
⦁韓愈의 古文運動 硏究/京畿大學校 敎育大學院,中國語敎育專攻/2002
⦁중국문학의 이해/김학주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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