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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비고 해제

저작시기 2008.11 |등록일 2009.04.15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2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문헌비고(동국, 증정, 증보)에 대한 논문입니다.

평가부탁드립니다.

목차

Ⅰ. 들어가며
Ⅱ. 문헌비고의 편찬
Ⅲ. 문헌비고의 체제
Ⅳ. 문헌비고의 간행과 배포
Ⅴ. 나가며

본문내용

Ⅰ. 들어가며

문헌비고(文獻備考)는 조선의 21대 왕인 영조(英祖)46년(1770)에 김치인(金致仁) 등이 왕의 명령으로 편찬한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를 연원(淵源)으로 한다. 이것을 조선의 22대 왕인 정조(正祖) 6년(1782)에 이만운(李萬運)이 왕명으로 추가ㆍ보충하여 정조 14년(1790)에 완성하고 증정문헌비고(增訂文獻備考)로 하였지만 간행은 되지 못하였다. 그것이 고종(高宗) 광무(光武)7년(1903)년에 홍문관(弘文館)에서 교정하여서 순종(純宗) 융희(隆熙)2년(1908)년에 250권 50책의 분량으로 완성되었고, 책의 이름은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라 하였다. 이는 문헌비고가 영조대로부터 순종대에 이르기 까지 140여년이라는 시간이 걸려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문헌비고는 우리나라의 문물, 제도, 전분야에 걸쳐서 상고시대(上古時代)부터 구한말(舊韓末)까지를 총망라한 유일한 유서(類書)이다. 동국문헌비고 이전에 권문해(權文海)의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이나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芝峯類說)같이 개인적관점에서 백과사전류의 저서들이 만들어지기는 하였지만, 국가적으로 편찬해놓은 저서는 없는 형편이었다. 물론 조선에서는 왕조초기부터 제도와 문물을 역사적으로 정리, 집대성한 중국의 유서(類書)였던 통전(通典), 문헌통고(文獻通考)를 이용하였는다. 그런데 영조연간에 이르러 조선이 자체적으로 문헌비고를 만들게 된 이유와, 그것이 크게 3차례에 걸쳐 개정된 이유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또한 문헌비고의 편찬자들과 간행이후의 쓰임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Ⅱ. 문헌비고의 편찬

1. 東國本
동국문헌비고는 영조 46년(1770) 왕명에 의하여 우리나라의 상고시대부터 편찬당시까지의 전장 및 문물제도 전반을 분류ㆍ정리한 책이다. 조선의 문예부흥기로 불리는 18세기 중엽에 각종제도와 문물에 대한 관심은 여러 형태의 관ㆍ사찬 서적의 편찬과 간행으로 이어졌다. 옥영정, 2007,「동국문헌비고에 대한 서지적 고찰」『진단학보』140, 진단학회 p.228

참고 자료

『증보문헌비고』1957. 고전간행회 영인본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홍재전서』
이유원『임하필기』

박인호. 1996『조선후기 역사지리학 연구』이회문화사
김상열 1983『증보문헌비고의 서주적 연구』성균관대학교 도서관학과 석사학위논문
엄애경. 1984 『문헌비고 예문고 연구』연세대 대학원 사학과 석사학위논문
정광수. 1990「증보문헌비고의 예문고 연구」『서지학연구』제5ㆍ6합집 서지학회
김문식. 2007「동국문헌비고 예고의 자료적 특징」『진단학보』104. 진단학회
박광용. 2007「동국문헌비고 편찬의 역사적 배경」『진단학보』104. 진단학회
옥영정, 2007「동국문헌비고에 대한 서지적 고찰」『진단학보』140, 진단학회
정승모. 2007 「동국문헌비고 민속자료의 특징」『진단학보』104. 진단학회
http://www.krp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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