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원불교]원불교소태산대종사(박중빈)의 종교체험과 불법, 원불교소태산대종사(박중빈)의 진리적 종교, 원불교소태산대종사(박중빈)의 사회사상과 평화교육사상, 원불교소태산대종사(박중빈)와 금강산법문 분석

저작시기 2009.04 |등록일 2009.04.14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5페이지 | 가격 2,500원

소개글

원불교소태산대종사(박중빈)의 종교체험과 불법, 원불교소태산대종사(박중빈)의 진리적 종교, 원불교소태산대종사(박중빈)의 사회사상과 평화교육사상, 원불교소태산대종사(박중빈)와 금강산법문 분석

목차

Ⅰ. 원불교 소태산대종사(박중빈)의 종교체험과 불법
1. 종교일수 밖에 없었던 경지
2. 불법을 주체로 삼은 종교성

Ⅱ. 종합적 인격체로서의 원불교 소태산대종사(박중빈)

Ⅲ. 원불교 소태산대종사(박중빈)의 진리적 종교
1. 왜 진리적 종교인가
2. 진리적 종교
3. 미륵용화회상의 구현

Ⅳ. 원불교 소태산대종사(박중빈)의 사회사상
1. 인과 인식: 개인적 복리의 원인 귀속문제
2. 마음에 관한 아이디어에서 나타난 사회 사상
3. 낙원 세계 건설 방식에서 나타난 사회 사상

Ⅴ.원불교 소태산대종사(박중빈)의 평화교육사상

Ⅵ. 원불교 소태산대종사(박중빈)와 금강산법문
1. 소태산대종사의 금강산유람
2. 김강산법문에 나타난 민족관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원불교 소태산대종사(박중빈)의 종교체험과 불법

1. 종교일수 밖에 없었던 경지

한 인간의 깨달음, 그것은 역사전환의 원동력이다. 암담과 방황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 사회를 비쳐줄 한 가닥 혼이 있다면 그것을 축으로 역사는 새롭게 전환되는 것이다. 1916년 당시, 이 나라 이 민족은 극도의 혼란에 빠져 있었고 일제의 착취 속에서 민중의 신념체계는 무너져 지향성을 잃고 있을 때, 소태산은 병진년 4월 29일 20여 년간의 구도 끝에 전라남도 영광 땅에서 대각을 이루었다. 역사적 전환의 축이라 할 수 있었던 대각 후, 그의 활동능력은 비록 처음에는 미미하게 보였지만 그가 제시한 철학은 세계를 하나로 보는 혼이 있었고, 민족 갱생의 길로 인도할 수 있는 저력이 있었다. 그런데 왜 소태산은 그의 원대한 철학과 민족 갱생의 저력을 가지고도 종교로서 출발할 수밖에 없었던가? 그는 구도 과정에서부터 대각에 이르기까지 진리에 대한 회의로 출발하여 궁극적 진리를 터득했다는 점에서 철학하는 모습이었다. 또한 대각후에도 그 당시 종교인들이나 종교적 추구자(구도자)들이 지향했던 것과는 판이한 작업을 시작했다. 즉 저축조합을 설립하고 숯장사 출자금 동원 그리고 유휴 노동력을 개발하는 것으로 간척사업을 진행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모습은 한국의 역사가 발전하면 할수록 훌륭한 일반철학의 창시자로서 사회 개척자로서 또 경제가로서 드러날 수 있는 역할이 될 수 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태산은 종교로 출발할 수 밖에

참고 자료

○ 성업봉찬회, 인류문명과 원불교사상, 소태산 대종사 탄생 백주년 기념 논문집, 1991
○ 원불교 교화부, 원불교 교전, 이리 : 원불교 출판사, 1977
○ 원불교학교재연구회 편, 종교와 원불교, 원광대학교 출판국, 1992
○ 졸고, 소태산 대종사가 본 한국의 미래상, 소태산 대종사 탄생 백주년 기념
○ 졸고, 소태산 대종사의 구도와 대각, 소태산 대종사 탄생백주년기념 성업봉찬회, 원불교70년 연정신사, 원불교출판사, 1989
○ 졸저, 원불교와 한국사회
○ 졸저, 한국종교사상사Ⅲ 원불교 편,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3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