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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수공업에 대해 알아보자!

저작시기 2007.11 |등록일 2008.11.16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0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대학교 교양과목중 역사라는 과목을 통해
이 레포트를 쓰게 되었구요-
조선시대 수공업에 관한 보고서입니다
물론 A+맞았고, 칭찬도 맞아서 교수님과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목차

[서론]
들어가면서

[본론]
I. 수공업
I-1 조선시대 수공업
II . 관영 수공업
II-1 관영수공업의 변화
1) 장인등록제의 붕괴
2) 관영수공업의 변질
II-2 관영수공업의 쇠퇴 과정
III.민영수공업
III-1 민영수공업의 성장
1) 도시 장인의 상품생산
2) 농촌수공업의 발전
Ⅳ . 제지수공업
Ⅳ-1 조지서와 지방지소
Ⅳ-2 조지서의 변화
Ⅳ-3 민간 제지업의 성장 배경
1) 대동법 시행과 공납제의 변화
2) 지가 상승과 지품의 향상
Ⅳ-4 제지기술
Ⅳ-5 지공예

[결론]

본문내용

I. 수공업
I-1 조선시대 수공업
조선 시대의 수공업은 대체로 민영 수공업과 관영 수공업으로 분류할 수 있다. 조선 전기에는 관영수공업이 주를 이루고 민영수공업은 거의 발달하지 못했다. 관영수공업은 국가가 장인을 통제하며 부역을 통해서 물품을 제조하게 하였다. 관영 수공업의 전문 공장(전문적인 수공업자)은 중앙(경공장)과 지방(외공장)로 국역 의무를 지고 있었다. 이들은 왕궁이나 관청에 필요한 물품을 제조하여 공급하고, 국역의 의무를 지고 난 후 제조한 물품은 스스로 판매할 수 있었다.
경공장은 상의원(궁중에서 왕의 의복을 공급하고, 금, 은, 보화를 관리하는 곳) 이나 군기시 (병기제조를 관장하는 관청)에 소속되었고, 외공장은 각 관청에 소속되어 관청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을 제조하였다. 경공장에는 2,800명정도의 인원이 있었는데, 기술별로 보면 모두 129종류로 구성되어 있었다.
능라장, 방직장 등 직조업 공장이 각각 100명 이상 있었고, 궁, 시인, 야장, 연장 등 무기제조에 종사한 공장이 각각 100명 이상 있었으며, 웅피장 등 특수한 기술자의 경우는 전체 서울 안에 불과 2명밖에 없었다. 외공장의 총수가 3,700여명이었으나 기술의 종류는 27종밖에 되지 않는데 경공장의 경우 2,800여명이 129종류의 기술자로 이루어져 있는 것과 경공장과 외공장을 합한 전국의 수공업자 6,500여명 가운데 그 40%이상인 2,800명이 서울에 있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농업생산력의 증대와 상품경제의 발달로 수공업도 발전하게 되었다. 특히 대동법 실시로 관수품 수요 증가와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게 되자 독립 민영수공업자(18세기 후반)는 독자적인 생산과 판매를 행하고 장인의 등록제 폐지 등으로 관영수공체제가 붕괴하게 되었다. 이들 민영 수공업자는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게 되는데 먼저 농촌에서 가내 수공업 형태로 면포, 명주, 마포, 모시 등의 자급자족을 위한 제조에서 판매를 위한 제조가 늘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상업 자본에 의해 지배되거나 의존하는 경우: 대개 공인이나 상인들로부터 주문과 함께 원료와 자금을 선대받아 종이,

참고 자료

조선시대 제지수공업 연구 / 김삼기 / 2006 / 민속원
ww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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