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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적,구이의 역사에 대해서

저작시기 2008.04 |등록일 2008.11.12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21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두부, 적, 구이의 역사에 대해서 세부적인 조사하여
옛문헌과 개인의 생각을 더해 작성하였습니다.

목차

1. 두부
- 두부의 시발과 전수
- 두부의 기록과 역사적 흐름
- 두부의 제조과정
- 두부의 종류
- 두부의 영양학적 효과
- 신문기사 발취내용 < 순두부도 세계화 >
- 신문기사 발취내용 < 콩을 세계화하려면 >
- 두부의 현재와 향후 발전방향 (자신의 생각)

2. 구이
- 구이의 역사
- 구이의 종류
- 구이의 현재와 향후 발전방향 (자신의 생각)

3. 적
- 적의 역사
- 우리문화와 산적
- 적의 종류

본문내용

두부의 시발과 전수

높은 영양과 저렴한 가격, 언제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이점 덕분에 꾸준히 우리네 밥상에 오르는 찬거리로 사랑 받고 있는 두부는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전 중국 한나라의 류안(劉安)이 회남왕(淮南王)으로 있을 때 처음 만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원래 한 고조의 손인 회남왕 류안은 도가에 심취돼 회남에서 수련을 했었는데 그를 동반한 승려들이 식생활 개선을 위해 두부를 연구 발명해 류안에게 대접했고, 그 맛을 본 류안이 대량제조의 명령을 내려 두부의 발명권은 류안에게로 돌아가게 됐다는 것이다.
우리의 문헌에서 두부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말기 성리학자 이색(李嗇)의 문집인 목은 집에 대사구두부내향(大舍求豆腐來餉)이라는 시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나물국 오래 먹어 맛을 못 느껴 두부가 새로운 맛을 돋우어 주네. 이 없는 사람 먹기 좋고 늙은 몸 양생에 더없이 알맞다`라는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두부의 전래 시기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 기원이 중국임은 확실하고 우리 문헌에 등장하는 때가 고려말이고 보면 아마도 가장 교류가 많았던 고려말에 원나라로부터 전래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우리 나라의 두부 만드는 솜씨가 뛰어나서 중국과 일본에서 그 기술을 전수해 갔다고 한다.

두부의 기록과 역사적 흐름
콩의 가공식품이지만 그 영양소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두부는 그 역사가 아주 깊다. 고려 말 이색의 <목은집>에는 `두부`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그는 "큰집에서 두부를 구해 먹다"라는 시에서 두부를 기름진 돼지비계에 견주면서, 늙은 몸을 보양하는 데는 두부만한 것이 없다고 했다. 또 기름에 지진 두부를 잘게 썰어 넣은 두부 국을 별미로 소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고려시대에 두부가 일반적인 음식으로 자리잡았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두부의 약진은 더욱 눈부시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는 두부 국을 먹었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으며, 허균은 서울 장의문밖 사람들이 두부제조기술이 뛰어나다고 기록해 놓았다. 우리의 두부제조기술은 외국에까지 알려질 정도로 유명했는데, 명의 선종은 세종에게 조선인의 두부제조 솜씨를 극찬하면서 두부 만드는 부인들을 보내달라는 칙서를 여러 차례 보냈다. 그때마다 여인들이 명나라에 가서 기술을 전수해 주었다. 일본 두부의 뿌리도 우리 민족과 떼려야 뗄 수 없다. 근세 일본 두부의 원조는 박호인 이란 사람인데, 그는 바로 임진왜란 때 포로로 잡혀갔던 조선인이다.
두부는 문헌상 기원전 2세기 한 무제 때, 손재간이 좋았다고 전해지는 회남왕이 처음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후 문헌에는 두부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다가, 당나라 말기의 문헌 `청이록`에야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북방 유목민족과 교류가 있었던 당나라 후기에 유락문화의 영향을 받아 두부가 만들어졌다고 학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 처음으로 두부가 전래된 것은 고려시대로, 송나라와 원나라를 통해 들어온 두부가 주로 사찰음식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기를 먹지 않는 스님들이 두부를 주요한 단백질 공급원으로 삼았던 것이다.
또한 임금님을 산릉((山陵 : 임금의 무덤)에 모시면 반드시 그 곁에 두부 만드는 사찰을 두어 제수(祭需 : 제사에 드는 여러 가지 재료)를 관리하도록 했다는 기록도 있다. 지금도 제수 상에는 반드시 두부부침이 들어간다.
조선시대도 두부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세종 14년 명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던 박신생이 명나라 임금의 서한을 가지고 돌아왔는데, 그 내용인 즉, 조선에서 보낸 궁녀들의 음식솜씨가 뛰어나고, 특히 두부를 만들고 요리하는 솜씨가 절묘하여, 앞으로도 두부를 잘 만드는 궁녀를 골라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이는 우리 나라의 두부 음식 문화가 뛰어났음을 증명해주는 자료이다.
두부는 다른 문화적 산물들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출발하여 우리 나라를 거친 뒤, 일본으로 전해졌다. 일본 두부 중에서, 가장 맛있고 전통 있는 두부를 들자면, 단연 고지시의 당인두부를 얘기하게 되는데, 이 당인두부를 처음으로 만든 사람은 바로, 임진왜란 때 납치되어 일본에서 살았던 경주성장 박호인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전통이 있고, 영양가 또한 높은 우리 나라 두부는, 근래 들어 국제적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미국에만도 대형 두부공장이 180여 개로 증가추세에 있고, 연간 매출이 1억 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참고 자료

우리음식의 역사
옛 고조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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