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기독교의 박해와 성장

저작시기 2007.11 | 등록일 2008.11.04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1,600원

소개글

서양고대사-로마제국의 기독교 박해~콘스탄티누스의 밀라노 칙령

목차

1. 로마제국의 크리스트교 박해
1) 박해의 직접적 원인
2) 박해과정
3) 디오클레티아누스와 기독교

2. 크리스트교의 성장
1) 밀라노 칙령
2) 콘스탄티누스의 종교진흥정책
3) 니케아 공의회
4) 로마의 국교화

본문내용

로마제국은 애시당초 크리스트교를 박해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로마의 종교정책이 황제에 대한 숭배와 국가종교를 존중하는 이상, 제국내의 모든 종교를 다 허용하였다. 그러나 크리스트교도가 이러한 국가정책을 존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병역을 거부함으로써 탄압의 서막이 올랐다. 서기 64년 네로 황제 때 최초의 박해가 시작되어 콘스탄티누스1세가 리키니우스와 함께 <밀라노 칙령>으로 공인하기까지(313년) 거의 3세기에 걸쳐 계속되었다.

◎박해의 직접적 원인
첫째, 유일신을 믿는 크리스트교 신도들은 로마의 이교적 우상숭배와 황제숭배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다신교와의 충돌은 불가피하였다.
두 번째, 로마인이 그리스도와 그 신도들에 대한 갖고 있던 오해와 증오심에서 나왔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2세기의 박해는 자연의 재해, 패전등의 원인이 크리스천들이 로마의 신들에게 제사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군중은 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미움을 폭발시켰다. 특히 로마인들은 자기들과 다른 생활을 하면서 윤리적으로 높은 수준에 있던 이들에게 갖는 본능적인 반감이 작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세번째는 로마제국의 황제들은 국경선도 없는 범세계적이고 초국가적인 성격의 크리스트교가 국가를 전복시킬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2~3세기의 유능한 황제들(네르바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까지의 오현제 시대)이 로마의 종교를 토대로 하여 국가를 내적으로 견고케 하고자 시도하였을 때 크리스트교는 장애물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박해를 받게 되었다.

◎박해과정
① 1기
네로 시대의 박해는 있었지만 대체로 100년까지 로마제국은 대체로 크리스트교에 관용과 묵인의 자세를 보였다. 크리스트교는 유대교의 한 종파로 간주되어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정당한 종교로서 대우받았다. 이시기에 있었던 박해는 황제들의 폭군적인 행동이었을 뿐이며, 로마시와 소아시아 지역에 한하였다.

참고 자료

박경민,『한권으로 읽는 크리스트교史』, 청목사, 1999
허승일 외,『인물로 보는 서양 고대사』, 길, 2006
시오노 나나미ㆍ김석희 역,『로마인 이야기13, 14』, 한길사, 2005
장석훈, 디오클레티아누스 시대 기독교 박해(303~305)의 성격, 200402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