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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조선왕조의 국정운영

저작시기 2008.10 | 등록일 2008.10.27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11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조선왕조의 건국부터 대원군 시기까지의 국정운영에 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序 論

Ⅱ. 本 論
1. 建國 初의 國政運營
2. 士林의 登場
3. 朋黨政治의 展開
4. 朋黨의 變質과 蕩平策의 實施
5. 勢道政治의 成立과 國政運營
6. 大院君 政權의 成立과 國政運營

Ⅲ. 結 論

▪ 參考文獻

본문내용

Ⅰ. 序 論
조선왕조의 개창은 다만 역성혁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ㆍ사상 등 여러 방면에 걸쳐 큰 변화를 가져오게 한 중대한 사건이었다.
고려왕조는 무신집권 이후 왕권은 이름뿐이었다. 무신집권시대에는 무신에 의해서 왕위의 폐립이 이루어졌고 원 간섭하에서는 원에 의해서 왕위가 결정되었다. 공민왕 이후에도 신권에 의해서 왕위의 폐립이 좌우되었다. 국정의 운영은 구심점을 잃고 무궤도하게 이루어졌다.
국가경제의 기반인 토지는 권문세족ㆍ사원세력ㆍ권신에게 점유되어 국가재정은 고갈을 면할 수 없었으며 다수의 民은 가혹한 착취로 빈궁에 허덕였다. 더구나 몽고의 침입,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 등 계속되는 전란으로 백성들의 고통은 더욱 가중되었다.
불교는 고려 후기로 내려오면서 많은 폐단을 드러냈다. 寺院田의 확대로 인한 세수감축, 有役子의 사원으로의 도피에 따른 생산력ㆍ군사력의 약화, 사찰의 남설(濫設)과 빈번한 불교행사로 인한 국력의 낭비, 승려들의 세속화 등으로 불교는 더 이상 국가의 지도이념으로서 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고려왕조는 결국 무신정권 이후 성리학을 바탕으로 성장한 신진사대부와 홍건적과 왜구의 축출과정에서 세력을 키운 신흥무인세력 연합에 의해 무너지게 되었다.
여기에서는 새로이 성립된 조선왕조의 시기별 정치주도세력과 그들의 국정운영 방법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Ⅱ. 本 論
1. 建國 初의 國政運營
1) 太祖
왕정시대의 정치운영은 왕권ㆍ신권ㆍ정치체제ㆍ정치세력ㆍ시대성 등이 상호연관을 갖고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태조대의 국정운영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이 시대의 중요한 정치방법의 하나는 국왕이 직접 왕명으로 정치를 펴는 것이었다. 또한 이 시대의 정치는 도평의사사나 개국공신 등 많은 관료가 직접 국정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국왕과 소수의 재신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각 관아에서 직접 국왕에게 주달하고 국왕의 재결을 받아 시행하는 방법이 있었고, 대간의 언론활동도 국정운영의 중요한 일부였다.

참고 자료

최완기,『테마로 읽는 조선의 역사』, 느티나무, 2000
국사편찬위원회,『한국사 22 조선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1997
국사편찬위원회,『한국사 32 조선후기의 정치』, 1997
이기백,『한국사신론』, 일조각, 1999
변태섭,『한국사통론』, 삼영사, 1996
강만길,『고쳐 쓴 한국근대사』, 창작과비평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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