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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최충과 사학

저작시기 2008.09 |등록일 2008.10.25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8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인물 최충은 그의 생애를 연표를 중심으로 하여 요약하였습니다. 그의 업적인 문헌공도를 중심으로한 사학 12도에 대해 명칭에 대한 쟁점부터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으며, 설립, 운영에 대해서 비교적 자세히 서술하였습니다. 여러 참고문헌을 보았고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기초하였기 때문에 원전의 비중이 큽니다. 마지막으로 쟁점은 2개의 타 논문과 비교하여 최충의 사학이 과거시험합격 양성만으로 전락하였는지에 대해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목차

Ⅰ. 최충
1. 생애 요약
2. 역사적 평가

Ⅱ. 사학
1. 설립
2. 운영
3. 쟁점- 타 논문과 비교하여

Ⅲ. 참고 문헌

본문내용

9재학당의 명칭을 분석하는 데는 일단 단순히 단어를 글자대로 해석하는 것으로, 9개의 앞의 글자 낙, 대, 성, 경, 조, 솔, 진, 태, 대를 동사나 형용사로 보고, 뒷글자 성, 중, 명, 업, 도, 성, 덕, 화, 빙을 명사로 목적어로 볼 수 있겠다. 또 다른 하나는 유학의 경전에서 9재학당의 명칭의 출처를 찾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사』의 분석에 따르면, 9재학당의 이름은 유가의 여러 경전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하며, 아무래도 최충이 경학에 밝았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후자의 학설에 더 신빙성이 있다고 본다. 이러한 9재의 명칭을 분석함으로써 교수철학이나 방법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아울러 9재는 단계적인 수직관계가 아니고 횡적으로 연결되는 동일 교육수준으로 단지 재명만 달리하여 교육하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사학의 교육방법도 주목할 만하다. 교육방법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보았는데, 위에서 잠깐 언급한 하과(夏課), 각촉부시(刻燭賦詩), 신급 제자를 교관으로 등용하는 조교 제도이다. 하과는 사원 승방을 빌어 산수를 노래하는 하기 강습회로, 사찰을 정하여 시부를 짓고 주연을 베풀면서 유생들간의 유대와 학습을 한 것이다. 이는 사찰이 한적한 장소라는 공간적인 이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불교문화권의 소산이기도 하다. 이 명칭은 고려 중기 이후부터는 都會라고도 불리고 있다. 각촉부시는 속성 시짓기 시험으로 모의 과거시험과 같은 성격을 띠었다. 촛불에 금을 그어 시 짓는 내기를 하고 그 시는 차례대로 방(牓)을 내어 이름을 부르고 들어가서 종일토록 시 읊기를 서로 주고받으며 술자리가 베풀어졌다고 한다. 세 번째 방법은 과거에 새로이 합격한 사람을 관리로 등용하기 전에 학교의 교사로 채용한 것으로, 과거에 필요한 정보들을 학생들이 많이 접할 기회를 제공했을 것이다.
이상에서 볼 때, 유학교육의 진흥과 관리양성을 주목적으로 하여 설립된 사학 12도는 유학적 품성과 소양을 갖춘 관료의 배양을 주도하였고 이에 중대한 역사적 의의를 가진 것으로 전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참고 자료

1. 원전류

《고려사열전》,《고려사절요》
2. 논문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탐구당, 2003.
권오영, 『최충의 구재와 유학사상』, 사학지, 1998
김일환, 『최충 사학의 교학정신에 관한 연구』,동양철학연구회, 1989
황인규, 『고려 유생의 하과와 사찰』, 종교교육학연구, 2006
황인규, 『고려시대 유생의 서재(서재)와 그 문화』, 한국교육사학, 2006
최태호, 『문헌공 최충의 문학 연구』, 근역한문학회, 2002
최광만, 『고려후기 교육제도사 연구동향 분석』, 한국교육사학,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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